일본이 올해 외교청서에 강제징용 해법을 기술하면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 표명을 누락했다. 일본 외무성이 어제 각의에서 발표한 ‘2023 외교청서’에 따르면 한국과의 강제징용 문제 논의를 설명한 부분에서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발언은 담기지 않았다. 일본의 외교 활동을 기록하는 연례 공식 문서에 과거사 반성이나 사과 관련 내용은 쏙 빼버린 것이다.
청서는 3월 6일 한국 정부가 제3자 대위변제 해법을 발표했다고 설명하면서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날 참의원 질의 응답에서 밝힌 기시다 총리의 역사 인식 계승 언급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만 넣은 선택적 기술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의 사과는 한국 정부가 마지막까지 요구한 강제징용 해법의 핵심이었다. 신경전이 오간 끝에 일본은 1998년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은 채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자국 총리의 발언마저 외교청서에서 제외한 것이다. 그래 놓고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을 6년째 되풀이하며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택한 것은 피해자 배상 문제로 한일 간에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그런데도 일본에선 기다렸다는 듯 강제징용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강제성’을 크게 희석시킨 기술을 했다. 한일 정상회담 후속 조치에도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청서에서 한국을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대응에 있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로 규정했다.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한국과 미래 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기시다 정부는 이제라도 책임 있고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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