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여동생 영정 사진을 안고 운구차로 향하는 오빠, 딸의 손때 묻은 인형을 끌어안고 그 뒤를 따르는 엄마. 대낮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만취 운전자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 양(10)의 발인식이 있던 11일, 가해자가 사고 당일 만취 상태로 차에 타는 영상이 공개됐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그것도 가장 조심해야 할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나.
교통안전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코로나로 이동량이 줄면서 2021년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9년보다 11.5% 감소했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5.2% 줄어드는 데 그쳤다. 승아 양이 숨진 다음 날에도 아들 셋 뒷바라지를 위해 오토바이로 떡볶이 배달을 하고 돌아오던 40대 가장이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특히 음주운전 재범률은 오히려 증가 추세다. 음주운전을 2회 이상 하면 가중 처벌하는 ‘윤창호법’에 대해 2021년부터 세 차례 위헌 결정이 난 후 보완 입법이 늦어지면서 상습 음주운전자가 늘어난 것 아닌가.
승아 양을 숨지게 한 가해자는 사고 당일 식당에서 맥주와 소주 13∼14병을 8명과 나눠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영상을 보면 가해자는 비틀거리며 걷느라 식당에서 10m 정도 떨어진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같이 마시던 사람들이 운전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어야 하지 않나. 음주운전 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형을 감경해주는 형법 조항이 ‘주취 감형’을 받은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임의 조항으로 바뀌었지만 그 후로도 음주에 관대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술에 취해 경찰관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예비 검사가 1심에서 선고 유예를 받았다. ‘주폭’을 처벌해야 할 사람이 주폭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도 전과 기록도 남지 않는 면죄부 판결을 받은 것이다. 5대 강력범죄 5건 중 1건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다. “술 때문에”라며 음주 핑계를 대는 이들에게 관대한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승아 양 사건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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