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 산책을 하다 꽃구경을 나온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벛꽃을 보며 팔짝팔짝 뛰던 아이가 말했다.
“와∼. 엄마, 다음 주에 또 오자.” “글쎄. 이 꽃잎들이 떨어지면 더 이상 꽃이 없어.” “진짜? 엄마, 그럼 꽃잎한테 떨어지지 말라고 해. 응?” “정말? 근데 꽃잎이 떨어지고 잎이 나야 열매를 맺지. 네가 좋아하는 사과, 오렌지 같은 과일이 다 꽃이 져야 만들어지는 거야.” “그래? 음∼, 그럼 빨리 지라고 해.”
아이가 무안할까 싶어 혼자 씩 웃으며 지나쳤는데 두 사람의 말이 계속 따라왔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도 그랬지만, 더 좋은 게 나타나면 아름다운 꽃잎도 찬밥 취급을 받는구나 싶은 아이의 말이 혼자 웃음 짓게 했다. 그런데 사실 꽃이나 꽃잎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다. 헤어지는 과정이다.
봄이 가는 것을 알리는, 꽃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보면 의외로 매끈하다. 한 몸으로 붙어 있던지라 생채기 같은 게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게 없다. 남아 있는 약간의 흔적도 곧 사라진다. 일반 잎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헤어짐이란 언제든 쉬운 일이 아닌데.
비결이 있다. 이들은 ‘잘 헤어지는 법’을 안다. 꽃이 피고 어느 시점이 되면 꽃잎과 꽃의 경계에 있는 세포들이 일을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 두세 배 정도 커지면서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든다. 식물은 단단한 세포벽으로 세포를 보호하는데, 이 ‘벽’을 허무는 ‘일꾼’을 만드는 것이다. 묘한 건, 떨어져 나가는 바깥쪽 세포(이탈 세포)들은 이 효소를 밖으로 배출하지만, 남아 있을 안쪽 세포(잔존 세포)들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나야 할 세포와 남아야 할 세포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세포벽을 이루는 리그닌이 하는 역할이 재미있다.
벌집처럼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리그닌은 일종의 접착제처럼 기능해 세포벽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초식동물들이 먹어도 소화를 못 시키게끔 하는데, 이 리그닌이 ‘일꾼’ 효소들을 울타리처럼 둘러싼다. ‘여기만 자르라’는 듯 말이다. 그 덕분에 가위 기능을 하는 효소들이 다른 곳이 아닌, 잘라야 할 곳을 정확하게 자른다. 한 몸이었던 ‘관계’가 이렇듯 상처 없이 매끈하게 마무리되기에 지는 꽃잎은 깔끔하게 떠날 수 있고, 남은 쪽은 외부 병원균 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다. 헤어짐 역시 꽃처럼 아름다운 이 이별법은 곽준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와 이유리 서울대 교수가 몇 년 전 규명한 것이다.
우리도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이건, 기업이건, 한 몸처럼, 또 꽃처럼 어울리다 서로에게 상처 주며 거칠게 찢어지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자연의 지혜는 참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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