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사를 낳았다 배고프다고 울고 잠이 온다고 울고 안아달라고 우는 천사, 배부르면 행복하고 안아주면 그게 행복의 다인 천사, 두 눈을 말똥말똥 아무 생각 하지 않는 천사 누워 있는 이불이 새것이건 아니건 이불을 펼쳐놓은 방이 넓건 좁건 방을 담을 집이 크건 작건 아무것도 탓할 줄 모르는 천사
내 속에서 천사가 나왔다 내게 남은 것은 시커멓게 가라앉은 악의 찌끄러기뿐이다.
―이선영(1964∼ )
사람의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 ‘나의 것’을 주장할 줄 모르는 어린이라고 해서 그의 목숨을 가볍게 볼 수 없고, 오래 산 노인이라고 해서 그의 죽음을 당연하다 볼 수 없다. 당연한 것은 생명이 생겨나는 자연스러움, 인생의 거칠 과정을 다 거친 후에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뿐이다.
분명 모든 목숨은 똑같이 귀한데 유독 아가나 어린아이의 죽음을 생각하면 더 분통하고, 더 억울하다. 그 연약함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다 크지도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소중한 존재로서의 아기가 등장하는 시를 읽자니 그 심정이 더하다.
한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이 시에는 아기라든가, 아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천사’라는 말만 나온다. 아기는 우는 것도 그저 배고프거나 안아달라는 이유로만 운다. 욕심도 부릴 줄 모르고, 남 탓할 줄도 모른다. 행복의 조건도 아주 단순하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를 천사라고 부른다.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깨끗한 천사가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한 엄마의 천사가 세상에 왔다가 너무 빨리 떠났다. 많은 사람들은 4월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천사가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천사를 지켜주지 못한 세상이 아름다워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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