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구도심의 나홀로 아파트와 신축 빌라에는 2030세대가 많이 산다. 인근 대규모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1억 원 미만의 전세보증금으로 새집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서 20, 30대 젊은이 3명이 줄줄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도권 일대에 주택 2700채를 갖고 전세사기를 벌이다 구속된 ‘미추홀구 빌라왕’ 남모 씨(61) 피해자들이다.
▷17일 새벽 31세 여성 박모 씨가 집 안에서 유서를 남기고 쓰러진 채 남자친구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박 씨는 전세보증금 7200만 원에 사기범의 아파트로 입주했고, 2021년 9000만 원으로 올려줬는데 아파트가 통째 경매에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날리게 됐다. 박 씨가 숨지기 50일 전인 2월 28일에는 전세금 7000만 원을 떼인 38세 남성이 대출 상환일이 다가오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은행 대출로 마련한 빌라가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그는 유서에 “더는 못 버티겠다”고 썼다.
▷14일 숨진 채 발견된 임모 씨는 고작 스물여섯이다. 고교 졸업 후 인천 남동공단에 다니며 6800만 원짜리 빌라 전셋집을 마련했다. 2021년에는 전세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으나 경매에 넘어가 5600만 원을 날렸다. 매매가 2억 원도 안 되는 집에 1억812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가 될까 무서워 7년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았지만 대출금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숨지기 닷새 전 어머니에게 전화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미안해요 엄마, 2만 원만 보내주세요.”
▷‘깡통 전세’나 갭 투기로 인한 전세사기가 늘면서 지난해 전세보증 사고액은 약 1조2000억 원으로 전년도의 2배로 급증했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이 2030세대다. 전세사기 매물들이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이 겨우 감당할 수 있는 금액대인 탓이다. 피해자 커뮤니티에는 “대출금 못 갚아 신용카드 거래가 정지됐다” “아이가 곧 태어날 텐데 한 푼도 못 건지고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는 피 말리는 사연들이 가득하다.
▷‘너희는 재산증식 우리는 보금자리’ ‘당신들은 기회겠지만 우리들은 삶의 꿈!!’. 어제 숨진 박 씨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 있는 전세사기 피해 호소문들이다. 숨지기 전날까지 피해 구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같은 피해자들에겐 “버텨보자”며 웃어 보였다고 한다. 임 씨도 어떻게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피해를 만회하려 보험회사에 재취업도 했지만 수도요금조차 못 낼 처지가 됐다. 탐욕스러운 사기꾼들에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도 애써 당차고 의젓했던 청춘들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