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 윤영석 위원장과 간사 등 여야 의원 5명이 어제 7박 9일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떠났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있는 독일과 2010년 유럽 재정위기 때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스페인 등이 주요 방문지다. ECB 총재와 각국 재무관 등을 만나 의견을 듣는 등 재정준칙의 실효성에 대해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재정준칙 법제화에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0월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0월에도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했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 흐지부지됐다. 문 정부의 ‘한국형 재정준칙’도 2025년으로 돼 있는 시행 시점 등을 둘러싼 여야 공방에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논의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기나 다름없는 길을 밟았다.
정권이 바뀐 뒤 이번엔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작년 9월 관리재정수지 적자 허용 폭을 GDP의 3% 이내로 하고, 통과 즉시 재정준칙을 적용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사회적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사회적 경제기본법과의 연계 처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여야가 또 맞섰다. 2020년 법제화 방침 이후만 놓고 봐도 이런 식으로 30개월간 깊이 있는 논의도, 결론도 내지 않던 여야 의원들이 이제 와서 뒷북 시찰에 나선 것이다.
이미 전문가들과 국회 차원에서 내놓은 해외 동향과 보고서가 많다. EU는 1992년 재정준칙을 도입했고, 전 세계적으로 106개국(2022년 기준)이 시행 중이다. 여기엔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 핀란드 등도 포함돼 있다. 유럽 시찰로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법제화 논의가 미뤄지는 사이 불어난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복합위기 속에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 악화까지 겹쳐 4년 만에 20조∼30조 원의 세수 부족 사태가 빚어질 공산이 크다. 재정준칙을 속히 만들고 시행 시기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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