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Y2K(밀레니엄 버그) 트렌드가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그 대표 패션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카고팬츠인 것 같다. 이른바 건빵바지로도 불리는 카고팬츠는 올해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디자인으로 런웨이를 장식하고 있다. 카키와 베이지 컬러는 기본이고 데님을 소재로 한 카고도 눈에 자주 띈다. 특히 카고팬츠 디자인의 핵심인 패치 포켓을 팬츠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크기를 키우거나 개수를 늘린 것도 특징이다. 패치 포켓은 기능성도 좋지만 착용자의 다리 라인을 날씬하게 보이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다.
카고팬츠는 원래 군대에서 거친 작업과 야외 활동을 위해 설계된 바지다. 1938년 영국 보병은 기존의 모직물로 만든 군복 대신 민첩하게 활동할 수 있으며 지도, 추가 탄약, 군용 식량 등을 몸에 밀착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실용적인 카고팬츠를 군복으로 채택했다. 미군도 기능성 포켓을 가진 카고팬츠의 장점을 수용해 군에 보급했다. 전쟁 후 군인들이 이 카고팬츠를 갖고 귀국하면서 대중의 유행 패션 품목으로 떠오른 것이다.
1960년대 후반 히피들은 청바지를 활용해 독특한 문화적 선언을 했다. 청바지에 구멍을 뚫고, 찢는가 하면, 아랫단에 보풀을 내고, 패치를 대는 등 고의로 상흔을 낸 것이다. 이는 당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해 발생한 젊은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표현하는 문화적 행위였다. 청바지와 함께 빈티지 스타일의 카고팬츠 역시 반전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40년 동안 카고팬츠는 지속적으로 시장에 출시되며 꾸준히 인기를 끌었고, 스포츠와 아웃도어에 적합한 대중적인 캐주얼 팬츠로 변모했다.
1990년대, 낡은 군용 카고팬츠를 입은 힙합 가수들은 기존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더욱이 CD 플레이어까지 넣을 수 있는 펑퍼짐한 포켓이 달린 카고팬츠는 ‘힙합 룩’ 그 자체로 등극한다. 누군가는 “카고팬츠는 다리를 위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같다”는 명언을 남겼다.
실용적이면서도 멋스러운 카고팬츠는 경제적으로 저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요즘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는다. 주어진 예산 내에서 절제와 소비 사이 저울질을 하며 필요한 것만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꼭 맞게 부응할 만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카고팬츠를 단순히 ‘짠’ 하고 다시 나타난 Y2K 트렌드의 산물로만 보는 것은 단편적이다. 카고팬츠는 때로는 문화적 함의로, 때로는 실용적 특성으로 세월을 거슬렀다. 특히 워크웨어(업무복)와 캐주얼을 오가는 기능성과 범용성이라는 탁월한 장점으로 그 오랜 시대의 파고를 견디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카고팬츠를 현대 패션의 ‘클래식’으로 명명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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