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 동생 자유에게 부치다(獄中寄子由·옥중기자유) 제1수·소식(蘇軾·1037∼1101)
수도 변경(汴京) 어사대(御史臺)의 옥중에 갇힌 시인은 생애 마지막임을 예감하고 아우 소철(蘇轍)과 처자식에게 시 2수를 남긴다. 이 시는 그중 첫 수로 죽음 직전에 쓴 이른바 절명시(絶命詩)라 더없이 암울하고 절절하다. 당시 그의 죄목은 시문을 통해 조정을 비판함으로써 민심 이반을 조장했다는 것. 부패나 역모 따위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갈등이 야기한 재앙이었다. 일종의 필화 사건인 셈이다.
군왕의 은덕이 온 세상에 가득한 지금, 아우야, 내 처신이 우매한 탓에 이제 죽을 처지가 되었구나. 나야 무덤에 들면 그만이지만 나 대신 여남은 가족을 돌봐야 하고, 홀로 남아 상심이 클 너를 생각하니 한없이 마음이 무겁구나. 그래도 내 마지막 바람은 우리의 인연이 대대손손 이어졌으면 하는 거란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떠넘기는 죄책감, 외로이 남을 아우 걱정. 그러면서도 끈끈한 인연을 거듭 다짐하는 형제애가 애틋하다. 그 후 동파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우가 형의 죄 갚음으로 자기 관직을 내려놓겠다고 상소했고, 개혁파를 이끌었던 정적(政敵) 왕안석마저 사죄(赦罪)를 청원하자 신종(神宗)은 결국 ‘하늘 같은 은덕’을 베풀었다. 시 또한 절명시의 운명에서 벗어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