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끈끈한 동맹 우의 다지면서도
자국 국익 앞세우는 佛·印·獨 리더들
尹, 환영 칵테일잔 오가는 순간에도
국익 위한 계산기 치우지 말아야
2000년 이후 작년까지 미국이 ‘국빈방문(state visit)’ 형식으로 외국 정상을 맞은 것은 모두 18차례다. 1년에 한 번꼴이 채 안 된다. 2013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의혹에 분노해 국빈방문 직전에 전격 취소한 일이 있긴 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최상의 예우와 대접을 받는 일이다 보니, 성사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외교적 성과가 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위해 오늘 미국으로 향한다. 이번 방문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대(對)중국, 대러시아 외교 관계의 중요 전환점이라는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를 놓고 한-미 대 중-러 간에 격렬하게 벌어진 전초전이 예고하는 바다.
대통령실은 대만-우크라이나 관련 윤 대통령의 발언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이라는 입장이다. 중-러의 괜한 과민반응이라는 것이다. 발언의 득실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다. “미국 중심 동맹열차의 앞자리에 올라타야 한다”는 ‘전략적 명확성’ 옹호론과, “중-러와 각을 세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는 ‘전략적 모호성’ 옹호론이 교차한다.
미국과 중-러의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이고, 양자택일이 가져올 결과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쉽게 결론을 낼 일은 아니다. 이런 때 미국과 중-러 간, 전략적 명확성과 전략적 모호성 간의 갈림길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우리에게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00년 이후 미국을 유일하게 두 번 국빈방문한 국가원수다. 미국으로선 최선의 호의를 베푼 셈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동맹은 미국 독립전쟁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관계다. 그런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 “유럽은 미국의 추종자가 돼서는 안 되며, 유럽의 것이 아닌 위기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유럽과 미국은 다르다’는 ‘전략적 자율성’론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윤 대통령에 이은, 바이든 정부의 세 번째 ‘국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는 미국이 중국의 인도·태평양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이는 나라 중 하나다. 미국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다자안보협의체 ‘쿼드’의 멤버다. 하지만 인도는 미국 등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결정적인 ‘구멍’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 발발 후 러시아산 석유를 중국 다음으로 많이 수입하고 있고, 인도 루피-러시아 루블의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금융제재를 종이호랑이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까지 논의하는 중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정상들과 함께 중국을 “적대적 경쟁자”라고 선언해 놓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의 ‘80년 혈맹’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간청을 뿌리치고 산유국들의 유가 기습 인상을 주도해 인플레 전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외로워지고 있다”는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의 최근 진단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주요 동맹 리더들이 ‘바이든 동맹열차’의 앞자리를 굳이 비워 두는 이유는 미국과 정서적으로 덜 친밀해서도, ‘바보’여서도 아닐 것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Decoupling)’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다 도를 넘어선 ‘메이드 인 USA 우선주의’가 동맹국들의 국익과 충돌하는 부분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미 미국의 반도체법이나 인플레감축법(IRA) 발효 과정에서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 안보 현실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동맹’과 ‘국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싫든 좋든 아직은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현실에도 눈을 감을 수 없다. 70년간 피로 나눈 한미의 진한 유대와 우정을 확인하는 샴페인 잔이 오가는 순간에도, 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한 주판과 계산기만큼은 치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방미 성과를 내는 만큼이나 국빈방문의 ‘사후 청구서’를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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