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에서 ‘천 원의 아침밥’이 인기다. 학생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다. 순천향대가 2012년 시작한 1000원의 아침밥 캠페인은 대학들의 자발적 참여로 확산되다가 2017년부터 정부가 가세했다.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쌀 소비 확대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 비용은 대학이 부담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2017년 10개 학교에서 시행된 아침밥 사업은 올해 41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고물가 시대에 1000원 아침밥이 연일 화제가 되자 여야 정치권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당정이 지난달 지원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 대표들도 앞다퉈 대학 식당을 찾아 아침밥을 시식하며 ‘보여주기식’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이달 들어 국민의힘이 희망하는 모든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야당은 ‘방학에도 적용’ ‘하루 두 끼 제공’ ‘전문대 포함’ 등의 방안을 쏟아냈다. 이러다가 대학생 무상급식 주장까지 나올 판이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대학생들에게 단돈 1000원으로 해결하는 한 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박수를 보내기엔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재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대학의 학생들은 1000원 아침밥이 그림의 떡이다. 기부금을 두둑이 내는 동문이나 지자체의 별도 지원이 없는 대학들은 아침밥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돈을 댈 수 없어 못 한다. 더군다나 고물가로 고통받는 이들이 대학생만이 아니다. 비슷한 또래의 대학 밖 청년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소외감을 키우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정치권이 1000원 아침밥에 매달리는 것은 1년이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에게 손쉽고도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대책이기 때문이다. 아침밥으로 청년 표심을 잡을 수 있다면 가중될 세금 부담이나 대학 재정난은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청년층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주 국회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야당은 일명 ‘대학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전에 발생한 대출 이자를 면제해주는 게 핵심이다. 현재는 취업 이전 기간에도 이자를 매겨 취업 후 함께 갚도록 하는데 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건 긍정적이지만 중졸·고졸 취업자에겐 혜택이 없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학자금을 무이자로 빌리게 되면 대학생의 무분별한 대출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연간 860억여 원이 투입되는 재원 조달 계획이 없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청년용 ‘퍼주기’ 대책은 더 경쟁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20대 무당층이 절반을 넘어선 상황에서 더 그렇다. 여당은 청년층 교통비 지원, 통신비 인하를 준비하고 있고 야당은 지난 대선 때 2030세대부터 우선 적용하겠다고 했던 ‘전 국민 1000만 원 기본대출’을 다시 꺼내 들었다.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연금·노동개혁은 뒷전으로 미룬 채 시혜성 대책들로 MZ세대의 환심을 사려는 건 기만이다. 정치인들이 국민 세금을 축내서 쓴 선심의 대가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임을 청년들이 더 잘 알고 있다. 1000원짜리 아침밥을 더 주느니 마느니 경쟁할 게 아니라, 청년층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고 제때 취업해 당당히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권이 진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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