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물류센터 시장
코로나19 때 온라인 쇼핑 호황에 물류센터 공급 급증하며 투자 늘어
원자재값 인상-고금리로 비용 증가… 단기 공급 과잉에 공실률 높아져
“부실 우려… 투자 옥석 가리기”
《서울 근교의 A물류센터. 축구장 7.5개 규모의 부지에 저온과 상온 물류센터(연면적 5만4000㎡)가 함께 있다. 2020년 착공해 2021년 준공된 이곳의 3.3㎡당 공사비는 223만2000원 수준이었다. 인근에서 지난해 공사를 시작한 B물류센터 역시 A물류센터처럼 저온과 상온 물류센터가 함께 있는 복합물류센터로 지어지고 있다. 연면적도 5만2000㎡로 A물류센터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공사비는 3.3㎡당 445만2000원으로 A물류센터의 갑절로 비싸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기관은 물론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 개인 고객까지도 물류센터 투자에 관심이 높았는데 온라인 쇼핑 증가세가 꺾인 데다 각종 비용이 높아지며 수익률이 떨어지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거치면서 수요가 폭발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물류센터가 흔들리고 있다. 온라인 유통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물류센터는 수익성 좋은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등으로 공사비와 금융 비용은 급등했는데 임대료는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 이제는 공급 과잉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4일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수도권 물류센터(연면적 1만6500㎡ 이상)의 공사비(착공일 기준)는 코로나19 확산 전이었던 2019년 3.3㎡당 262만6000원에서 지난해 348만5000원으로 33% 올랐다.
인천 내 연면적 1만 ㎡ 규모 복합물류센터 시행사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물류센터 공사비가 연일 오르며 어떻게든 공사를 빨리 끝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시멘트, 철근 등의 가격이 2∼3년 전과 비교하면 50∼60% 이상 오른 상황”이라고 했다.
공사비 인상세는 저온 물류센터일수록 두드러진다. 수도권에서도 물류센터 수요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경기 이천시에서 지난해 착공한 C상온물류센터(연면적 3만6307㎡)의 3.3㎡당 공사비는 340만8000원. 2021년 인근에 들어선 D상온물류센터(연면적 4만5698㎡)의 공사비(3.3㎡당 218만1000원)와 비교하면 약 56% 올랐다.
경기 이천시의 연면적 1만8961㎡ 규모 E저온물류센터는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공사비는 약 300억 원 수준으로 3.3㎡당 516만9000원이 투입됐다. 2021년 인근에 완성된 F저온물류센터(연면적 2만6502㎡)는 총공사비가 230억 원 수준으로 3.3㎡당 공사비는 286만7000원. 저온물류센터의 공사비가 2년 만에 80% 이상 올랐다는 의미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물류센터 인기도 덩달아 뛰었다”며 “수도권 인근에 물류센터 공급이 이어지면서 임대료 상승세는 주춤한 반면, 금리와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라 공사비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오르고 있다”고 했다.
● 공사비 30% 이상 올랐는데 임대료는 제자리걸음
실제 물류센터 공급량은 지난해 12월 기준 394만 ㎡ 규모에서 올해 말 790만 ㎡로 불과 1년 새 2배로 뛴다. 통상 물류센터가 착공에서 준공까지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부터 2022년 공사에 돌입한 물류센터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류센터가 공급되다 보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곳도 나온다. 경기 평택시에 연면적 10만 ㎡ 이상의 초대형으로 건설 중인 한 복합물류센터는 준공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임차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 내년까지 인근에 공급될 물류센터 면적이 100만 ㎡에 이르는 탓에 임대차 계약 협의에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이처럼 공급이 단기간 급격히 늘면서 공실률도 오르는 추세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기업 CBRE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기준 수도권 A급 물류센터의 공실률은 10%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1∼6월)의 공실률(4%)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임차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물류센터가 늘면서 임대료 인상 역시 주춤하고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에 따르면 수도권 물류센터(연면적 1만6500㎡ 이상)의 임대료는 2019년 3.3㎡당 2만9590원에서 지난해 3만1860원으로 3년 동안 8%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공사비는 30% 이상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익률 하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사업부 부동산팀장은 “단기간 공사비가 급등했다는 것은 임대료가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지 않은 이상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라며 “2∼3년 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물류센터 투자에 나섰던 분위기를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 인기 식자 거래량 감소… 부실 우려 커져
물류센터 수익률 하락은 고스란히 투자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물류센터 거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4% 감소한 2조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1년 만에 물류센터 거래 규모가 반 토막 난 셈이다. 연간 누적 거래금액도 2021년 7조2000억 원에서 지난해 5조6000억 원으로 약 21% 감소했다.
거래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나온 인천의 한 물류센터 매도 호가는 1100억 원 수준. 2년 전 매물로 나왔을 당시 매매가는 300억 원이 더 높은 1400억 원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임차인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지금보다 매매가가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물류센터 인기가 식으면서 공사 중인 물류센터 중에는 대출에 차질을 빚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2∼3년 전에는 임차인 수요를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도 ‘브릿지론(단기 대출)’을 금융권에서 큰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임차인을 확정한 물류센터의 브릿지론 신청이 거절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공사비에 금융비용 증가로 물류센터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고, 대출도 곳곳에서 막히기 시작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대출을 연장하지 못한 물류센터 등이 부실채권으로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물류센터 시장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업용 부동산컨설팅사 관계자는 “수도권에서도 서울과의 접근성과 주변 임차 수요 등에 따라 물류센터 인기가 갈리고 있다”며 “각종 비용이 높아져 부실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만큼 투자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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