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에 0.3% 성장했다고 한국은행이 어제 밝혔다. 지난해 4분기의 ―0.4%에서 다소 회복하며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가까스로 피한 것이다. 수출과 투자 부진이 계속됐지만 실내 마스크 착용 해제를 계기로 민간소비가 되살아나면서 성장률 반등을 이끌었다.
역성장 탈출에는 성공했더라도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안도할 일이 아니다. 1분기 성장에 기여한 것은 민간소비 말고는 사실상 없었다.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로 음식·숙박업 지출이 늘고 여행·공연 같은 대면 활동이 활발해진 영향이 그마나 소폭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체감물가 고공 행진, 고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 등이 계속되고 있어 소비에 기댄 성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성장의 한 축인 수출이 동력을 잃으면서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은 1분기 성장률을 0.1%포인트 깎아내렸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처음으로 4개 분기 연속 순수출이 성장을 끌어내린 것이다. 13개월째 이어진 무역적자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꾸준히 잡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황 침체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 지연으로 수출은 이달 들어서도 두 자릿수의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성장을 견인할 기업 투자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미 1분기 설비투자는 4% 급감해 4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어제 발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14개월째 부정적 경기 전망을 내놨다. 특히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통신장비업의 5월 경기 전망은 31개월 만에 가장 낮다.
1분기도 사실상 제로 성장에 머물면서 우리 경제는 경기 둔화의 긴 터널에 갇힌 모양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고, 한은도 지난달 내놓은 1.6%를 다시 낮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 회복을 상정한 ‘상저하고’의 낙관적 전망을 접고 비상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동원하는 섣부른 방법보다는 민간투자 활성화와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경제 운용의 방점을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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