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정치’ 향한 분노가 反사회적 범죄로
팬덤으로 지탱하는 韓 정치, 분열까지 더해 위험
15일 일본 와카야마시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게 사제 폭발물을 던진 용의자 기무라 류지(木村隆二·24)는 범행 열흘이 지난 25일까지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변호사를 요청해 국선 변호사가 선임됐지만 입을 열지 않는다.
기무라가 일본 변호사연합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児)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다가 그만뒀다고 최근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이자 정치 이슈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저명인사다. 도쿄도지사 선거에 범야권 후보로 출마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기무라의 속내는 알기 어렵다. 다만 정치 현안에 자기주장을 펼치는 인권 변호사 선임 시도 등을 보면 자신을 정치범 혹은 확신범이라고 여기는 듯한 정황이 엿보인다.
그가 운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은 ‘피선거권 연령·선거 공탁금 위헌소송 홍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기시다 총리도 세습 3세” “세습이 만연한 원인은 입후보에 300만 엔(약 3000만 원) 공탁금을 요구하는 선거법 때문” “조직표로 당선된 의원들이 선거 결과를 무기로 마음대로 한다” 같은 일본 정치를 비판한 문장이 가득하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팔로어도 없는 이 계정은 욕설은커녕 오타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진지하다. 끔찍한 테러범 계정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사제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의 범행 동기는 특정 종교에 대한 불만이었다. 집권 자민당이 해당 종교와 깊은 유대를 맺어 자신의 가정이 파괴됐다는 이유로 테러를 가했다. 용서받기 힘든 범죄임에도 야마가미에게 영치금과 편지를 보내며 호응하는 사람마저 있다.
보통·평등·비밀·직접투표로 이뤄지는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정치인을 상대로 하는 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전·현직 총리에게 비슷한 방식의 테러가 반복된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한 일본 기자는 “반사회적이고 극단적인 범죄이지만 그 배경에 변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지반(地盤·지역 기반) 가반(가방·자금) 간반(看板·가문)이라는 ‘3반 프리미엄’을 업고 시작부터 우위에 서는 세습문화, 수십 년간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원로 의원, 대안 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허약한 야당…. 시민사회의 건전한 정치 참여와 견제가 이뤄지지 않아 시민 대다수가 정치에 목소리 내길 포기하자 반사회적 테러가 독버섯처럼 머리를 드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일본보다 나을까. 야당 시절에는 ‘재정 포퓰리즘’을 비판하더니 여당이 돼서는 지지율 하락이 무서워 전기요금 인상 계획부터 거둬들이는 국민의힘, ‘돈봉투 의혹’에 “50만 원은 밥값도 안 되는 실비”라며 마비된 도덕성을 보여주는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국민 54%(2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찍을 정당이 없다’고 했다.
정권 교체가 가능한 한국의 양당제는 ‘자민당 절대 우위’ 일본 정치 체제보다 낫다고 평가받았다. 활발한 정치 참여는 역동성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극단적 ‘팬덤 정치’를 먹고 살며 나라를 두 쪽 내는 해악으로 변질됐다. 바뀌지 않는 정치에 대한 분노에 상대를 향한 증오까지 더해진 현실에서 일본 같은 ‘정치 테러’는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테러로 나라가 분열된다면 그때는 폭력이 정당화되는 지옥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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