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여씨춘추’[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9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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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한 시대의 음악은 고요하고 명랑해서 정치가 올바르고, 불안한 시대의 음악은 흥분하고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정치가 괴이하고, 망해가는 시대의 음악은 감상적이고 슬퍼서 정치가 위태롭다.” 여불위(呂不韋)의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말이다. 독일계 스위스 작가 헤르만 헤세는 이 말을 인용하며 2000여 년 전의 중국인들이 서양 음악이론가들보다 음악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여불위에 따르면 음악은 본질적으로 고요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초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본질로부터 멀어진 음악에서 찾았다. 그들의 음악은 우울하고 격렬했으며 그럴수록 나라는 더 위험해지고 결국에는 망했다. 헤세는 그의 마지막 소설 ‘유리알 유희’(1943년)와 친구인 오토 바슬러에게 보낸 편지(1934년)에서 구체적으로 ‘여씨춘추’를 인용하면서 대중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음악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경계한 것은 음악이 사람들을 도취시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었다. 개인에게서 개인성을 지워버리고 수백 수천 수백만 명을 하나의 집단 충동으로 묶어 열광하게 만드는 영웅주의를 경계한 것이다. 그는 “환성, 비명, 감동, 눈물로 가득한 친목”을 유발하는 영웅주의가 결국에는 “전쟁, 광기, 유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나치의 광기였고 그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그는 바흐와 모차르트가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운 작곡가라고 생각했다. 베토벤도 아니었고 바그너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생각은 음악을 너무 도덕적인 잣대로 가늠하는 편협한 청교도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음악이 본질적으로 고요하고 조화롭고 명랑해야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은 그리 틀린 것이 아닐 수 있다. 헤세의 말대로라면, 아니 그가 인용한 여불위의 진단대로라면, 슬픔과 분노를 비롯한 격렬한 감정들로 가득한 현대 음악은 위태로운 시대의 징후일지 모른다.

#헤르만 헤세#여씨춘추#왕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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