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연금개혁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연금개혁으로 정년 및 연금 수령 시점이 늦춰지면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에 불리한데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반감은 수치로도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이포프에 따르면 두 번째 임기의 재임 1년을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4월 국민 만족도는 26%였다. ‘재임 대통령’ 선배들에 비하면 고개를 못 들 성적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재집권 1년 뒤 만족도는 1989년 4월 46%,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65%였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프랑스를 바라보는 외국인 기자로선 마크롱 대통령에게 오히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금개혁 논의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한국을 보면 더 그렇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 약 70%의 반대에 맞서 지지율 추락을 감수하고 입법을 완료하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집권 초에 인기 없는 정책을 내놓으면 남은 3년이 피로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는 “연금개혁은 어려운 일이라 (국정 장악력이 강한) 집권 초에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개혁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프랑스인들로선 당장 혜택이 줄기 때문에 불만스럽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연금개혁은 불가피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한 2017년 약 1000만 명이던 연금 수급자는 2030년 20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연금 재정은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 점차 그 폭이 커질 예정이다. 고령화는 심각해지는데 프랑스인이 노동시장을 떠나는 평균 연령은 남성 60.4세, 여성 60.9세로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남성 62.6세, 여성 61.9세)보다 낮다. 노인 빈곤이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려면 정년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이 다른 이슈를 압도하고 있어서 잘 부각되진 않지만 사실 마크롱 대통령이 달성한 대외 정책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올 2월 파리에서 회동하더니 이달 초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과 친밀함을 드러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비아냥거림을 듣긴 했지만 결국 시 주석은 26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와의 협상과 대화를 촉구했다. 물론 이는 다른 서방 국가들과의 합작품이지만 불과 20일 전 시 주석을 만난 마크롱 대통령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이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발언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부터 대러 제재를 위한 협력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동맹과 협력할 부분은 잘 챙기면서도 필요한 말을 당당히 해야 이를 주요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독단적이란 이유로 ‘마피터(마크롱+주피터)’로 불리는 그에게도 화합을 위해 반대파의 요구를 포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보다 초라해진 프랑스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을 고려하면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프랑스인 75%도 “프랑스가 쇠락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조사에선 현 상태를 표현하는 3가지 단어로 ‘불확실성’ ‘걱정’ ‘피로’를 꼽았다. 현실에 대한 진단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각종 개혁 과제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마크롱 대통령 같은 개혁 동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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