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바람이 부는 날엔 서점에 가야 한다 [이재국의 우당탕탕]〈7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8일 03시 00분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머리가 복잡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무작정 서점에 간다. 가판대에서 자기 좀 봐달라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책들의 제목만 읽어도 충분히 위로를 받고 삶의 힌트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책 코너에 가서 책 제목 몇 개만 읽어도 때 묻은 내 동심이 세수를 한 듯 개운해지고, 20대 작가가 쓴 책 제목을 보면 그 시절의 열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정신이 번쩍 든다.

요즘 30대는 주로 자기 일과 연애에 대한 고민이 많고 40대와 50대는 노후 준비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후 준비를 잘하라는 내용의 책 중에는 빨리 돈을 더 축적하고 돈 샐 곳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쪽과 인생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더 많으니 빨리 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남은 인생을 더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모두 맞는 이야기였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책에서 얻은 힌트로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면 되는 거니까.

서점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인생의 막바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이, 자기의 성공담을 자랑하는 자서전이 많았다. 그분들은 감히 인생과 성공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다. 먼저 살아봤고, 먼저 경험했고, 성공도 해봤으니까. 어릴 때는 잘 와닿지 않았던 자서전의 제목들이 50이 넘으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전 돌아가신 분들이 들려주는 인생의 마지막 메시지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머릿속이 복잡하면 레코드숍에 갔다. 앨범 재킷에 그려진 사진이나 그림을 감상하고 앨범 수록곡 제목을 천천히 읽다 보면 그곳이 루브르 박물관이 됐고 국립도서관이 됐다. 당시 팝 가수들의 앨범 재킷은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작품이 많았고 노래 제목이나 노래 가사도 가장 트렌디한 단어와 문장들로 쓰여 있었기에 레코드숍에 한번 다녀오면 해외여행 다녀온 것처럼 리프레시가 되곤 했다.

요즘은 레코드숍이 별로 없다 보니 다시 서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에도 머릿속이 멍하고 답답해서 무작정 서점에 갔다. 서점 입구에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길래 살펴봤더니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이라는 책과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그리고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라는 책이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책 제목만 읽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고 제목만 읽어도 위로가 되고, 나를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 책들이 베스트 코너에 올라 있다는 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해서 아닐까? 나는 책 제목에서 이미 위로를 받았지만, 그 세 권을 사들고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 주에 만나게 될 세 명의 지인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그들도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람이 부는 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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