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늘면서 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은행권의 대출 연체율은 2월 말 현재 0.36%로 2년 6개월 만에 최고로 올랐다. 이 중에서도 담보가 없어 금융권이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가계 신용대출 연체율이 0.64%에 달하고, 기업 대출도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가 늘고 있다.
신용도 낮은 고객이 상대적으로 많은 제2금융권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주요 카드사 연체율은 3월 말 일제히 1%를 넘어섰다. 특히 고금리 카드론 연체가 쌓이면서 연체 기간이 3개월이 넘는 잠재적 부실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도 지난해 말 이미 3.4%로 1년 전보다 1%포인트 가까이 뛰었고, 올 들어선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산 규모 상위권인 일부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5%에 육박하고 있다.
이 같은 연체율 급등은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경기 악화가 겹친 탓이 크다. 대출 금리가 올라 갚을 돈이 불어나는데도 경기 침체와 인플레로 대출 상환 여력은 떨어지면서 연체율이 치솟고 잠재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금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를 고려하면 연체율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으로 각종 대출에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을 해준 조치도 9월이면 끝난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에서 은행권이 전망하는 가계의 신용위험이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20년 만에 최고로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 신용위험 역시 더 나빠질 것으로 조사됐다. 팬데믹 시기에 급증한 ‘영끌’ ‘빚투’나 개인사업자 대출의 연체가 향후 더 늘어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글로벌 은행 위기의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해외 금융 리스크가 국내로 전이되거나 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경우 가계·기업의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권은 연체율 상승 등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대출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을 넉넉히 쌓아 금융사 건전성을 높이고, 일시적인 자금난에 처한 기업과 가계가 흑자도산하지 않도록 단계별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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