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문병기]12년 만의 美 국빈 방문이 남긴 과제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일 03시 00분


‘선을 위한 힘’으로 격상된 한미동맹
조급증 경계하며 장기 실익 확보해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한미 정상회담 다음 날인 4월 26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 청사 ‘해리 트루먼’ 빌딩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가 주최한 국빈 오찬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대거 모였다.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국무부 초청으로 오찬에 참석한 기자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소감을 묻자 흥분된 목소리로 “환상적이었다”며 “12년 전 한국 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빈 방문 준비에 참여했지만 이번 회담 분위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회담 성과에 대해서도 호평이 많았다. 국빈 오찬장에서 만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과 미국 모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미중 패권경쟁을 분석한 ‘예정된 전쟁’의 저자로 국제정치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앨리슨 교수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두 동맹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 것은 큰 성과”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동맹을 ‘선을 위한 힘(force for good)’으로 규정했다. ‘선을 위한 힘’은 미국이 자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언급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협력체 쿼드(Quad)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요 글로벌 현안에 대해 미국과 공유한 가치를 투영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국무부 당국자는 “한국에 대한 표현으로 그보다 더 적합한 용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이뤄진 국빈 방문이라는 흥분을 걷어내고 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선 앞으로 풀어야 할 만만치 않은 과제들도 확인됐다.

먼저 비확산 체제에 대한 미국의 완고함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회담 기간 워싱턴 선언에 대한 국내 여론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핵협의그룹(NCG) 창설 등 새로운 확장억제 강화 조치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운 것.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의 핵 공유 효과”라는 대통령실의 평가에 “핵 공유는 아니다”라고 즉각 반박했다. 핵 문제에 대해선 외교적 수사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이 최우선 과제지만 미국은 핵우산을 통한 아시아와 유럽의 비확산 체제를 유지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두 개의 전선에서 핵 경쟁이 본격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향후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워싱턴 선언의 성패를 가를 열쇠가 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으로 대표되는 바이든식 산업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재확인됐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IRA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담판이 이뤄지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외교가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우려를 해소하도록 배려하겠다’는 수준의 언급만 나와도 절반은 성공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대통령실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기업에 대한 특별한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제조업 복원과 수출 통제로 미국 주도의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국내 기업의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는 점은 여전한 부담이다.

한미 정상이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액션플랜에 합의한 워싱턴 선언이나 한미 국가안보실이 첨단반도체와 양자컴퓨터, 우주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협력 확대를 논의할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신설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피부로 느낄 실익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사안들이다. 당장의 평가에 집착해 조급한 무리수를 두는 것은 피해야 할 악수다.

#한미동맹#회담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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