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연주가 박종기 명인(1879∼1941)이 임종 때 남긴 말이다. 자신은 죽더라도 제자의 마음속에 다시 살 것이라는 스승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평생 일군 음악을 제자에게 오롯이 전할 수 있어서 그는 아마도 행복했을 것이다. 타고난 예인의 자질에 성실함까지 갖춘 박종기 명인은 평생의 음악 연륜으로 대금산조를 창시하며 험난한 시절을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산조를 제자 한주환 명인(1904∼1963)에게 전수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주가에게 산조는 특별한 음악이다. 몰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좌절하게도 만든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을 견디도록 연주가의 삶을 붙들어 두기도 한다. 이런 산조의 힘은 그 음악 속에 전해오는 선대 연주가의 희로애락이 내 삶에 겹쳐 실리기 때문이다. 느린 진양조에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구성은 사람의 일생과 닮아 있다. 게다가 각 악장에서 풀어내는 조(調)의 변화는 악절마다 새로운 사연을 엮어 간다. 박종기 명인의 대금산조는 한주환 명인에 이르러 틀이 온전해졌고, 그 제자들의 개성이 보태지면서 스승과 제자의 금도(笒道)는 서로 다른 유파를 창출하며 풍성해졌다.
올봄, 나는 오랜만에 한주환류 대금산조를 무대에 올렸다. 한주환의 연주는 힘 있고 강렬하다. 고졸한 선율 속에서 대나무 통이 쫙 갈라질 듯 에너지가 폭발하는 성음은 20대의 나를 매료시켰다. 말년의 한주환 명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명인의 성음을 좇는다.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더해 시간이 겹겹이 쌓이는 음악, 산조! 그래서 연주가는 죽어도 그 음악 속에 계속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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