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년 만에 한국을 넘어섰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를 대표 수출품으로 하는 제조업 경쟁국이다. 지난 10년간 대만이 연평균 3.2%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동안 한국은 2.6%의 낮은 성장세를 지속했다. 그 결과 대만의 지난해 1인당 GDP가 3만2811달러(약 4400만 원)로 3만2237달러였던 한국을 추월한 것이다. 대만 통계처는 “대만이 한국을 앞선 것은 2004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대만은 1970∼90년대에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 1990년대까지 한국을 앞섰지만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성장이 둔화됐다. 1인당 GDP는 한국에 뒤처지고 ‘추락하는 용’이란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2016년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이 ‘기술은 안보의 보장판’ ‘민간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인공’이라며 산업 전략을 과감히 전환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중소·중견기업 중심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만은 TSMC 등 주문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대기업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학 관련 학과가 반년마다 신입생을 받도록 해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R&D) 투자액의 25%를 세액공제해 주는 지원책은 최근에야 지원법을 만든 한국보다 훨씬 빠르고 파격적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만의 산업 전략은 빛을 발하고 있다.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60%에 육박하고, 시가총액은 2019년 말에 이미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반도체 침체로 지난해 한국이 478억 달러 무역적자를 낼 때 대만은 파운드리 호조로 514억 달러 흑자를 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대만은 2.0%로 1.5%인 한국보다 높다.
한국은 반도체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7개월 연속 수출 역성장, 1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겪고 있다. 경제 성장엔진인 제조업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과거 한국에 추월당했던 대만이 절치부심하며 그랬던 것처럼 국가 산업 전략을 기초부터 다시 짜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부가 성장 드라이브를 걸지 않는다면 대만을 다시 따라잡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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