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버리지 않는 나라[임용한의 전쟁사]〈261〉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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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제일 가치 있는 노획물은 사람이었다. 젊고 건강한 남녀를 잡아가 노예로 팔았다. 강화가 성립되고 전쟁이 끝나도 잡혀간 사람들을 되찾아 오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팔려 간 사람을 찾아오려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해야 했다.

고려말 왜구들이 납치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정몽주는 이들이 잡혀간 것은 나라와 통치자들의 책임이라고 관료들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했다. 이 운동은 성공해서 상당수의 고려인을 귀국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드문 사례다.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은 정부가 못 본 척하자 심양에 있던 소현 세자의 거처에 와서 시위를 했다. 소현 세자는 무역으로 모은 자금으로 이들을 풀어주고, 농장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했다.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사람들을 계속 구하자는 구상이었다. 세자의 노력은 포상을 받기는커녕 사병을 키우고 왕위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인조의 의심만 샀다.

신미양요 때 미군에게 포로가 된 조선 병사 몇 명이 있었다. 미군 군의관에게 절단 수술까지 받은 부상병도 있었다. 미군 측이 조선 정부에 포로 석방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원래 조선의 법에 포로가 된 자는 항복한 것으로 간주한다. 항복한 자는 사형이다. 중국, 일본, 고대에 전쟁의 법칙이 다 이러했지만, 이때는 19세기 말이다. 대학생 시절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군들은 조선인 포로들을 내려주고 떠났다. 조선 정부도 말처럼 이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분노는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전쟁사에서 포로, 끌려간 백성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지배층의 몰상식을 탓할 일만도 아니다. 잡혀간 자신들의 친인척도 어쩌지를 못했다. 절반의 이유는 나라가 가난하고 능력이 부재했던 탓이다. 이번 수단 내전에서 우리 국민들이 무사 귀환을 했다. 국가의 행동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책임감 못지않게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정글이고 힘없는 정의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을 버리지 않는 나라#임용한의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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