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록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폴 매카트니가 한 말이라며 이런 말을 인용했다. “음악을 차별하는 건 인종차별보다 나쁘다.” 모든 음악에 편견을 갖지 말고 두루 사랑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일단 폴 매카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출처 없는 말이 방송 때문에 사실로 굳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설령 폴 매카트니가 실제로 한 말이라 해도 어떻게 음악에 대한 차별이 인종차별보다 나쁘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예술에 우열을 가릴 수가 있나요?” 마치 모든 음악을 수용하고 공평한 척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이도 무의식적으로 숱하게 예술의 우열을 가려왔을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오정희의 소설과 귀여니의 소설 사이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두 소설을 모두 읽어본 나의 입장에서 “예술에 우열이 없다” 말하는 이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난 지금껏 예술에 높낮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다. 그걸 겉으로 내세우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이 음악의 우와 열을 판단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음악을 아우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이만큼 더 많은 음악을 들을수록 어떤 음악이 더 좋고 훌륭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등 음악이 재즈란 생각을 하게 됐다. 숱하게 들어온 ‘음악 감상의 끝은 재즈’란 말을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게 됐다.
물론 누군가에게 재즈는 이미 고전음악처럼 창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스탠더드 재해석만 있는 사문화된 장르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안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는지, 또 그 창작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술과 만나는지를 알게 된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네 명이 함께하는 중창 그룹 카리나 네뷸라의 ‘Good Match’를 들으며 재즈의 고등한 기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카리나 네뷸라란 이름은 낯설겠지만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인 말로, 박라온, 강윤미, 김민희가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재즈계에선 큰 화제를 모았다.
앨범의 타이틀곡 ‘Good Match’는 가사가 없는 노래다. 네 명의 멤버가 돌아가며 스캣(재즈에서 목소리로 가사 없이 연주하듯 음을 내는 창법)으로 곡을 완성했다. 비록 가사는 없지만 네 명의 각기 다른 목소리로 연출되는 스캣은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에 이명건(피아노), 정영준(베이스), 이도헌(드럼)의 연주는 사람의 목소리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받침이 돼준다. 기술이 좋은 창작을 만날 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는지를 ‘Good Match’는 증명해낸다. 기술과 예술을 아울러 기예라 부른다. ‘Good Match’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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