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까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는 빌라(연립·다세대주택) 10채 중 6채는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자금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고가 올해 하반기 전국 곳곳에서 터질 것으로 우려된다. 세입자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역(逆)전세’ 대란의 시한폭탄이 대기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재작년 5∼12월에 전세 계약이 이뤄진 빌라 10만6000여 채를 조사해 봤더니 현재 보증금으로는 63%인 6만6000여 채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들 빌라의 현재 보증금이 13조 원이 넘고, 이 중 2조4000억 원, 한 채당 평균 3600만 원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내주지 못하면 전세금을 떼일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큰 서울 강서구는 이런 경우가 빌라 전세 계약 중 85%에 이른다고 한다.
하반기 역전세 폭탄의 경고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켜진 상태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정점을 이뤘던 2021년 6월 이후 계약한 전세의 만기가 다가오는데 그 사이 전세 시세는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빌라 전세가격은 8개월 연속 하락세다. 이미 올해 1분기에 이뤄진 빌라 전세 계약의 55%는 작년 4분기에 비해 전세금이 하락했다.
이달부터 HUG의 보증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진 것도 기존 세입자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공시가격의 1.5배까지 가입할 수 있었지만, 이달부터 1.26배까지만 가능하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18.6%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실제 보증한도는 낮아진다. 전세금의 상한선 역할을 하는 보증한도가 줄어들면 그만큼 전세금도 떨어진다. 집주인들이 차액을 융통하지 못하면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으론 대응하기 어렵다. 지원 대상을 조직적·계획적 전세사기의 피해로만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전세 피해 역시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에선 고통이 가볍지 않다.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보증금 예치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연구해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세사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피해를 키웠던 우를 다시 반복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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