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계의 ‘미운 오리새끼’[서광원의 자연과 삶]〈71〉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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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세상이 변해서일까? 분명 같은 나무인데, 예전과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나무가 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아카시아라고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다.

아마 40대 이상은 기억할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한목소리로 이 나무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웬일인지 그런 목소리는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심지어 꽃을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아까시 꽃을 5월의 꽃이라고 할 정도다. 아름다우면서도 향기가 일품인 까닭이다. 하나같이 있어서는 안 될 나무라고 한 게 얼마 전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름까지 바뀐 채 이 땅에 살게 된 이 나무의 과거는 험난 그 자체였다. 산림 녹화를 위해 어느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이 나무를 곳곳에 심었는데, 워낙 성장세가 좋다 보니 신성한 곳(묘지)을 거침없이 침범했던 것이다. 뿌리로도 번식할 정도로 힘이 좋다 보니 묘지 속으로 ‘마수’를 뻗치는 탓에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이런 왕성한 기운으로 주변 나무들, 특히 소나무들을 죽인다고 해서 한때는 베는 것으로도 모자라 뿌리까지 파헤칠 정도였다. 이 나무가 온 산을 뒤덮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비등했다.

당시 김준민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작고)가 이 나무는 300m 이상의 고도에서는 살 수 없고, 수명이 20∼30년이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기에 그럴 필요가 없으며, 무엇보다 콩과 식물이라 유익한 측면이 많다고 했지만 ‘성난 민심’에 묻혀 버렸다. 김 전 교수가 유익하다고 했던 건, 여느 콩과 식물이 그렇듯 뿌리혹박테리아를 이용해 땅속에 질소를 고정시키기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흘러 2000년대가 되자 원성은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들었다. 김 전 교수 말이 옳았던 것이다. 눈앞의 피해는 확실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미래는 멀리 있는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이제 아까시 꽃은 아찔한 향기와 고급 꿀을 풍성하게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다. 큰 나무 한 그루에서 많게는 50L가 넘는 꿀이 나오다 보니 국내 꿀벌의 70%가량이 이 꽃에서 꿀을 얻고 있을 정도다. 영어 이름이 ‘벌나무(Bee tree)’인 게 이래서다. 하지만 수명이 비교적 짧은 데다 최근에는 이상기후까지 덮쳐, 5월이면 어디서나 맡을 수 있었던 향긋한 꽃내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야 향기나 꿀을 잃을 정도지만 문제는 꿀벌들이다. 인류의 식생활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꽃의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있는 이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꽃인데 예전에는 많다고 난리였고 이제는 없어진다고 난리다. 식물계의 ‘미운 오리새끼’가 따로 없다.

#식물계 미운 오리새끼#아까시나무#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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