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초반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라크에서 원유를 실은 선박에 이란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였다. 내가 탄 일본 선박은 페르시아만의 사우디 항구에서 원유를 싣고 나와야 했다. 이란의 적대국가의 선박은 아니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때는 워낙 해협이 좁아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선원이 식당에 모였다. 선장님이 비장한 얼굴로 회사의 지시사항을 알렸다. 전쟁위험 구역에 들어가니까 희망자는 싱가포르에서 하선시켜 준다는 것이다. 페르시아만에 입항함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면 대신 위험구역 항해수당을 주었다. 우리 선원 전원은 전쟁구역을 들어갔다 오기로 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는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란 군함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무사히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당시 높은 위험수당을 받고 페르시아만 내의 위험지역을 항해하는 특공대 선원들이 있을 정도로 우리 한국 선원들은 용감했다. 그 무렵 종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포클랜드 해역을 항해하게 되었다. 포클랜드 해역을 항해하는 동안 야간에 군함 한 척이 우리 배에 접근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그냥 통성명만 하고 지나쳤다.
운송할 화물이 있다면 선장은 배를 몰고 전쟁위험 구역이라도 들어가야 한다. 항해 중, 전쟁이 발발하면 현재 항로를 변경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해할 항로의 해도는 물론 항로가 폐쇄될 경우의 대체항로에 대한 해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만해협 항로의 위험성이 높아진 적도 없다. 선장은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를 대비한다. 사우디 등에서 원유를 싣고 우리나라로 오는 유조선은 싱가포르의 믈라카 해협을 지나 대만해협이나 필리핀 북쪽의 바시 해협을 지난다. 대만이 중국에 의하여 봉쇄된다면 전쟁위험 지역이 되어 항로의 변경이 불가피하다. 인도네시아의 롬복 해협을 지나 필리핀의 남동쪽을 지난 뒤 우회하여 우리나라로 올라와야 한다. 3일 정도 항해가 더 길어진다. 이를 위해 롬복 해협의 해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장일 때는 선박과 화물과 선원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켜 주는 것이 선장의 큰 임무이자 항해의 목적이었다. 해상법 교수인 나는 대체항로의 선택 시 경제적 영향과 법적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대만해협 봉쇄 시 항해 거리가 길어지면서 선박 공급량은 부족하게 되며 운임은 대폭 상승하게 돼 물가 상승을 촉발하게 만든다. 전쟁 발발 시 불가항력적으로 길어진 용선 기간에도 용선자가 선주에게 용선료를 지급해야 하는지를 검토하게 된다. 전쟁보험에 가입하길 권한다. 만약, 우리 국적 유조선에 외국 선원들이 탄 경우 과연 전쟁위험을 무릅쓰고 입항해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원유를 가득 싣고 나올 것인가? 아마 외국 선원들은 대부분 싱가포르에서 하선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하루에 한 척씩 원유선이 원유를 싣고 오지 않으면 경제가 마비됩니다. 나와 같이 전쟁위험 지역에 들어가서 원유를 싣고 나옵시다.” 선장이 비장한 얼굴로 애국심에 가득 찬 연설을 하면 한국 선원들은 그를 따를 것이다. 한국 선장과 선원이 승선하는 국가필수선대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고마운 우리 상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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