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을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질병’으로 정의한다. 고독함은 만성적 염증과 같아서 몸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영미권 의학계에서는 알약 형태의 외로움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감정 상태인 외로움을 병리적 차원에서 연구, 개선하려는 시도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이 최근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만큼 해롭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외로움과 고립에 시달리는 이들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29% 더 높고, 뇌졸중은 32%, 치매는 50% 더 크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비벡 머시 단장은 외로움의 문제를 공중보건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주치의’로 불리는 그는 현장에서 다뤄 온 여러 질병의 공통 요인이 외로움이라는 점을 발견한 뒤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내면의 배고픔이라는 외로움은 특히 육체적으로 노쇠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고령층을 쉽게 무너뜨린다. 고령층을 10년 이상 추적 관찰한 조사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노화 속도가 1년 8개월 더 빨랐다. 인지능력은 20% 더 빨리 저하됐다.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이 없이 우두커니 하루를 보내면서 삶의 자극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일본에서는 2주 동안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노인이 15%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말동무가 돼 줄 AI 로봇이 개발됐다지만 기계음에는 온기가 없다.
▷‘21세기의 감염병’인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 의료계, 미디어, 시민단체 등이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번에 나온 미국 보고서에도 6개 분야별 권고 사항이 빼곡히 담겼다. 머시 단장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루 15분씩 전화하라. 캘린더에 적어 놓고 하라”고 조언한다. 자신도 1년 넘게 지독한 고립감에 고통받던 시절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준 부모와 여동생, 정기적으로 연락해준 2명의 친구 덕분에 이를 극복해냈다고 한다.
▷급속한 도시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저출산, 고령화, 노인 빈곤 등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얽혀 있는 한국에도 외로움은 사회적 숙제다. 지금도 누군가는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하는 절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수록 함께하는 따뜻한 밥 한 끼,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안부가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내 옆의 가족과 친구에게 연락 한 번 더 해보는 건 어떨까. 늘 “괜찮다”고만 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가정의 달 5월은 손을 내밀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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