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A 검사는 검찰 내에서 이른바 부서 말석(末席)이 맡는 ‘밥총무’였다. 매달 10만∼30만 원씩 직급에 맞는 돈을 걷은 뒤 매주 정해진 날 부원들의 식당 예약부터 돈 관리까지 하는 게 밥총무의 일이다.
“초임검사는 아침에 밥총무 일밖에 안 한다. 가족 없이 지방에 온 검사들은 평소 혼자 밥먹으러 다니니까 점심을 먹을 때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그런데 선배들마다 메뉴와 식당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 다르다. ‘어제 술먹었으니 해장국집 가자’ ‘바쁘니 가까운 데서 먹자’ 등 아침마다 쪽지가 수십 개씩 온다. 이를 조율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다 간다.”
문제는 밥총무를 향한 ‘직장 내 갑질’을 동반했다는 점이다. ‘밥총무를 잘해야 기획도 잘한다’는 말은 갑질을 숨기기 위한 포장이었을 뿐이다. 말하는 사람보다는 지위가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 낮은 경우에 쓰는 ‘압존법’ 때문에 A 검사는 선배 B 검사로부터 수없이 많은 언어폭력을 당했다. “쪽지 때문에 매일 혼났다. 압존법이 틀렸다고 첫날 불려가 눈물이 쏙 빠지게 세 시간 동안 혼났다. 두 번째는 메신저의 글씨색이 분홍색이라고 또 혼났다. 세 번째는 ‘○○○ 선배 △△△ 선배’라고 써야 되는데 ‘○○○ △△△ 선배’라고 썼다고 ‘○○○가 네 친구냐’라고 혼났다. 기상천외한 이유로 계속 괴롭혀 머리가 다 빠졌다.” 압존법은 군대에서조차 2016년 폐지됐다.
A 검사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했더니 B 검사는 “선배의 (수사)기록은 두껍고 너의 기록은 얇지 않느냐. 그 대신 너는 밥총무라는 임무가 있다”고 했다. “계속 시키면 회사를 나가겠다”는 말에는 “그 정신으로 나가서 뭐라도 될 거 같냐.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A, B검사가 모두 여성이어서 젠더 이슈로 번지진 않았다.
이는 2018년 1월 취재파일에 적어둔 내용이다. 2017년 9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밥총무를 폐지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에도 계속된 것이다. 아직도 밥총무는 상당수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A 검사는 출산을 한 뒤 복직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날이면 육아 때문에 오후 7시면 퇴근을 한다. 일이 많으면 출근을 일찍 하거나 밤에 다시 청사로 나온다.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겼을 때 조퇴를 하거나 연차를 쓰겠다는 A 검사에게 부장검사는 못마땅하다는 듯 “부모님은 뭐하시길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내 새끼를 내가 키워야지, 왜 어른들이 봐주셔야 되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시댁과 친정 어른들은 거주지가 멀고 지병을 앓고 있어 아이를 맡길 수 없다.
최근 만난 A 검사는 업무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만 승진은 포기했고 진로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아닌 건 아니다’라고 하고, 육아휴직을 쓰고, ‘칼퇴근’을 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A 검사의 사례가 특수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악습과 폐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곰팡이처럼 계속 피어난다. 인권수호기관을 자처하는 검찰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그리고 내부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연진이’가 없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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