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발(發) 무더기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 조작을 주도한 불법 투자회사 대표와 그에게 돈을 맡긴 전주들이 하나같이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가 조작의 타깃이 된 기업 오너 일가 등이 폭락 전에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판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우연히 그때 주식을 판 것뿐”이라고 한다.
사건의 핵심인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는 미등록 업체를 세워 투자자를 모으고, 유통량이 적은 9개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1∼3년에 걸쳐 주가를 끌어올리고 수익의 절반을 챙겼다. 특히 전주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증거금의 2.5배까지 투자할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들까지 만들어 주가를 조종했다.
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투자자문업체를 운영하거나, 타인 명의로 CFD 계좌를 여는 건 모두 불법이다. 특히 여러 투자자의 계좌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쪽에선 팔고, 다른 쪽에선 비싸게 사서 주가를 높인 통정매매는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도 라 씨는 불법 업체 운영 사실만 인정할 뿐 주가 폭락의 책임을 해당 기업 오너 등에게 돌리고 있다.
연예인, 의사, 재력가 등 수백 명의 전주들 역시 고수익을 노리고 돈과 개인정보를 불법 업체에 일임했다는 점에서 순전한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주가 상승 등 조작 가능성이 의심되는데도 주위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주가가 폭락해 CFD 거래 증거금이 부족해지면서 수억∼수십억 원씩 빚을 졌다고 한다.
문제의 종목들이 폭락하기 직전에 주식을 처분한 이들도 여럿이다.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폭락 나흘 전 자사 주식을 팔아 605억 원을 현금화했다.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그보다 사흘 앞서 457억 원어치의 주식을 처분했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자들이 폭락 직전 주식을 대량으로 팔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는 제도의 허점, 감독당국의 부실한 감시망을 틈타 불법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려던 이들의 조직적 범죄란 점이 확인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 스스로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하는 조작 세력들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해 빠짐없이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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