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의 후속으로 ‘중국 경쟁 2.0’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는 물론이고 투자 제한, 경제 제재 등 광범위한 중국 견제 조치가 담길 예정이다. 미 상원의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반도체법을 모델로 국가안보를 강화해 전 세계에서 중국 역할에 대항하고 경쟁해야 한다”며 3일 이 같은 입법 계획을 내놨다.
미 의회가 지난해 8월 통과시킨 반도체법이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내걸고 중국 내 반도체시설에 대한 투자를 막았다면, 이번 법안은 반도체를 넘어 바이오 배터리 에너지 등 첨단산업에서 전방위로 대중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이전이나 투자를 막기 위해 자국 기업은 물론이고 동맹국 기업에 대한 대중 수출 통제나 투자 심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는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한층 더 고도화, 노골화되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추느라 타격을 받고 있다. 단기간에 요건을 충족하기 힘든 불리한 조항이 많지만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후속 법안이 가시화되면 우리 기업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의 움직임에 맞서 중국이 보복 수위를 높일 경우 한국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첨단산업 필수 소재인 희토류 등 광물 수출을 제한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안보 심사를 하고 있다.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을 통제한 미국 일본 네덜란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조사도 요청했다.
슈머 원내대표가 “반도체법, IRA를 넘어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한 만큼 한국에 대한 대중 공세 동참 요구나 통상 압력이 거세질 게 뻔하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첨단산업·기술 분야로 확대하는 건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일방적으로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긴밀히 소통하면서 부정적 파급 효과를 최소화할 해법을 찾아 미국 측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미중 경쟁과정에서 우리가 또 ‘유탄’ 맞는 일이 없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반도체법이나 IRA 제정 때처럼 뒤통수를 맞고 후속 대응에 진땀을 빼는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