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들의 상당수는 ‘A 폭격기’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A 학점을 후하게 뿌려주는 교수나 강사의 과목은 늘 수강 신청이 쇄도한다. 학점에 한 단계 높은 플러스(+)를 몰아주는 ‘쁠몰’ 강의는 학생들의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런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새벽부터 인터넷 수강신청 시스템에서 ‘광클 전쟁’을 벌인다. “점수가 사해보다 짜다”는 불만을 듣는 교수들은 설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성적표에서 ‘A’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교육부 대학알리미 등에 따르면 이른바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 지난해 2학기 전공과목 A 학점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57∼59%에 달했다. 재학생 5000명 이상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A 학점이 가장 많은 이화여대의 경우 그 비율이 60.8%였다. 10명 중 6명 가까이 A 학점을 받은 것이니 융단폭격 수준이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이뤄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평가 시스템이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영향이 컸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교수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학점이 장학금과 편입, 취직 등에 직결되는 현실에서 평가의 엄정성만 외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가 이의신청 기간이면 “내 인생 책임져 주실 거냐”는 학생부터 장학금이 얼마나 절실한지 읍소하는 학생들의 방문과 이메일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0.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신입생들도 고3처럼 공부하는 게 요즘 대학가 풍경이기도 하다. 치열해지는 경쟁이 학점 부풀리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점에 민감해지는 건 해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뉴욕대에서는 화학 분야의 저명한 노교수가 “강의가 어렵고 학점도 낮게 준다”는 수강생들의 집단 항의로 학교에서 해고된 일도 있었다. 당시 350명의 수강생 중 80여 명이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가 학생들의 배움과 행복을 저해한다”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했다. 평가 기준과 학점의 문제를 떠나 팬데믹 기간 저하된 교육의 질 문제에서 Z세대를 교육하는 방식까지 간단치 않은 고민거리들을 대학가에 던졌다.
▷평가는 결국 변별력의 문제다. A 학점으로 도배된 성적표만으로 인재 감별이 어려워진 구인 기업이나 기관들은 결국 다른 기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학생들은 이미 공모전과 자격증, 각종 대외활동 등 또 다른 스펙 쌓기에 한창이다. 성적 줄 세우기를 넘어 활동 분야를 다양화하는 장점이 있다지만 이 또한 경쟁 부담이 작을 리 없다. 상아탑에서 학문 연구에 몰입해보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모든 인플레이션이 그렇듯 학점 또한 결과적으로는 더 큰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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