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시대에 어떻게 연주하는 게 옳았다는 판단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겨두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는 ‘그들만’ 하이든을 연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브레멘 도이치 카머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하이든 교향곡 96번과 104번을 지휘한 이 악단 수석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전문가’란 누구일까.
1830년대 바이에른 궁정 오케스트라의 플루티스트였던 테오발트 뵘은 금속세공사였던 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아 플루트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손에서 플루트는 여러 키(key)로 덮인 악기가 됐다. 연주가 간편해지고 반음계가 정확해졌으며 소리도 커졌다. 오보에와 클라리넷 등 다른 목관악기도 이와 비슷한 키 장치를 이어받았다.
트럼펫이나 호른 같은 금관악기들도 밸브 장치가 달리면서 예전보다 많은 음을 낼 수 있게 됐고 강력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전 악기들이 공예품이었다면 새 악기들은 기계였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는 양 창자를 말려 꼰 기존의 현이 강철 현으로 대체됐다. 팀파니 같은 타악기도 크기와 장력이 커졌다. 이런 일들이 1840년대에서 19세기 후반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고, 그 결과는 훨씬 강력한 음향이었다.
음악사에서 당시는 모험의 시기이기도 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중세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종합예술’ 음악극을 꾀했고, 강력해진 악기들은 그가 원하는 음향에 맞았다.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진 상공인 계층이 콘서트를 채우면서 연주회장의 규모도 커졌다. 새로운 음악과 악기, 극장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는 벨기에를 중심으로 고악기 연주 운동이 일어났다. 정격(正格) 연주, 역사주의 연주 등 명칭은 갖가지지만 이들은 당시 잘 연주되지 않던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연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하이든에서 베토벤에 이르는 18세기 말∼19세기 초 고전주의 시대 음악까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을 연구해 손대기 시작했다. 예르비가 말한 ‘전문가’들이다.
1970, 80년대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지휘하는 ‘고음악 아카데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이끄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등은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레퍼토리에서 기존의 악단들이 차지하던 영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연주하는 게 옳고 저렇게 연주하는 건 그르다는 식의 판단이 넘쳐나면서 현대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은 하이든 교향곡 같은 곡을 프로그램에 올리기를 겁먹게 됐죠.”(파보 예르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존 엘리엇 가드너 같은 고악기 지휘자들은 낭만주의 시대인 19세기 중반 멘델스존, 슈만에까지 손을 뻗쳤다. 악기의 혁신이 일어나기 직전 작곡가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지휘자 로저 노링턴은 “100년 전까지 오케스트라 현악 연주자들은 비브라토(떠는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며 20세기 초반 말러의 교향곡까지 연주하고 나섰다.
이 움직임들에는 조금씩 근대의 음악으로 영역을 넓혀온 역사주의 음악가들과 기존 현대 지휘자들 사이 ‘세력 전쟁’의 냄새가 난다. 이달 서울 예술의전당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하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도 그 전장 한가운데 있다. 그도 19세기 후반 브루크너와 말러의 작품을 지휘한다. 그는 “말러와 브루크너 시대의 관악기는 오늘날과도 다른 소리를 낸다. 말러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 쉬츠나 바흐의 음악을 잘 알았고 나는 20세기 스트라빈스키 음악까지 잘 안다”고 말한다.
음악 팬들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칼 같은 고증에 의한 연주부터 현대 오케스트라의 관습을 백 퍼센트 따른 연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음악에서 출발한 헤레베허나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출발한 예르비 모두 일종의 ‘절충주의’를 택하고 있다. 옛 연주법을 살리되 효과가 제대로 살지 않는 부분은 현대 악기와 연주법을 응용한다는 개념이다.
“어떤 연주법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옳은’ 것보다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파보 예르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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