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도취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아부이다. 그런데 아부가 나쁜 것일까? 아부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을 흡족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의 한 부분이고, 행복의 요체이다. 아부는 인간의 삶 전체를 달콤하게 하는 양념이다.
누구는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거짓에 속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행복은 진실이 아니라 허상에 달려 있다. 어차피 인간 세상은 변화무쌍해서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허상이라도 자기 만족을 주는 결론에 취하면 된다. 그래서 인간이란 애초부터 거짓에 끌리게 만들어져 있는 존재이다.
필자의 주장이 아니다. 15세기 최초의 인문주의자라고 불리는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뒤로 더 끔찍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데, 끔찍해서 못 읽겠다. 왜 좀 더 일찍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까? 학창 시절에 깨달았더라면 일찌감치 가짜 뉴스의 편에 서서 지금쯤 존경받는 거부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러나 에라스뮈스 자신도 우신의 신도로 살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은 그렇게 해도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 혹은 희망을 갖기는 했던 모양이다. 에라스뮈스 이후에도 인문주의자들과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교육과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사기꾼과 선동가는 세상에 발을 붙일 곳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면 우신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인공지능(AI)에 기대를 거는데, AI도 아부로 채워진 데이터에 점령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끔찍한 가짜 뉴스가 맹위를 떨치며 존중까지 받는 영역이 있다. 전쟁이다. 정치도 전쟁이다. 며칠 전에는 러시아 크렘린궁 상공에서 불꽃이 터졌다. 러시아는 보복을 외치며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너무나 허접하고 부실한 공격이었는데, 누구도 명확한 증거가 없고, 증거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의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 믿음을 깨트리지 못할 것이다. 왜 이 전쟁이 점점 인류의 양심과 능력을 시험하는 전쟁처럼 되어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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