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견법보다 중요한 것[펫 앤 라이프/김도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0일 03시 00분


김도희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대표
김도희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대표
연간 2000건 이상 발생한다는 개물림 사고. 끔찍한 이미지와 함께 기사가 뜰 때마다 댓글 창에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개 보호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의 부주의를 지적하거나, 개에 대한 안락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 최근 정부는 ‘맹견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맹견 사육허가제’를 도입해 공격성 등을 판단하고 ‘사고견 기질평가제’를 도입해 위험도가 큰 경우 안락사도 가능하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맹견법(Dangerous Dogs Act)은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핏불테리어 등 4가지 견종을 ‘위험할 정도로 통제 불능’ 상태에 두는 것을 보호자의 위법 행위로 규정했다. 미국의 경우도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개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한국도 동물보호법에 원칙적으로 5가지 견종을 맹견으로 분류하고 외출 시 입마개 및 목줄 착용 의무 등을 부과한다. 사고 발생 시 안락사(압수물 폐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맹견법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우선 영국의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특정 견종을 ‘위험한 개’로 지정하는 데 반대한다. 어떤 개라도 지내는 환경이나 보호자에 따라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견종이 아니라 위험한 행위를 한 개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물림 사고가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위라는 데에도 부정적이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는 위험신호에 대한 교육을 통해 상당수의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쉽게 개를 구매하고, 기를 수 있는 구조부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한국처럼 동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시장과 동물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 없이 ‘소유’할 수 있는 제도가 존치하는 한 개물림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맹견법 제정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모든 개는 ‘물 수 있는’ 동물이다. 개와 반려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특정 견종에만 맹견 꼬리표를 붙이고, 사고 시 안락사 처리를 한다고 해서 개물림 사고가 없어질까. 소방안전 교육이나 지진 대피 요령처럼 개물림 예방 및 대처 교육과 캠페인에 힘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맹견 사육허가제’나 ‘사고견 기질평가제’는 최대한 견고하고 촘촘하게 설계돼야 한다. 맹견의 개인적인 판매나 양도를 금지하고, 사육 허가 조건을 엄격히 규제하고 단속해야 한다. 맹견 보유 시 수수료를 부과하는 국가도 있다.

평상시 식별 가능한 목줄을 착용하게 하고 집 앞에 경고 표지판을 세우거나 웹에 등록하는 등 호주나 미국의 사례들도 참고할 만하다. 설령 안락사가 가능하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난 다음 최후의 최후가 돼야 할 것이다. 부디 이번 맹견법 논의가 우리에게 맹견법보다 중요한 것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맹견법#맹견 사육허가제#사고견 기질평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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