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은 요즘 말로 ‘찐 노을 맛집’이다. 서울 용산의 빌딩 숲 앞에 펼쳐진 한강 한복판의 이 인공섬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입지다. 강폭이 영국 템스강의 3배, 프랑스 센강의 6배에 달하는 한강이 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바라볼 수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들섬은 처음에는 섬이 아니었다. 백사장이 깔린 쉼터였다. 1960년대 한강 개발을 맡은 민간업체가 소유해 시민들의 접근이 어렵게 된 노들섬을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사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하지만 ‘부유층을 위한 전유물’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노들문화회관’이라고 이름 지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서울시는 오페라하우스 설계 공모작을 두 차례 내고도 실현시키지 못해 세계 건축계에서 ‘양치기 소년’이 됐다. 고 박원순 시장은 2012년 노들섬을 주말농장용 텃밭으로 만들고 꿀벌까지 키웠다. “환상의 입지에 왜 텃밭을…”, “노들섬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지금의 노들섬 건물은 복합문화기지를 표방해 500억 원을 들여 2019년 문을 열었다. “보존에 매달렸으면 작은 정자나 세울 것이지, 이도 저도 아닌 노들섬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7월 자신의 네 번째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한 오세훈 시장은 올해 2월 ‘매력 서울을 위한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을 선언하며 첫 대상지로 노들섬을 지목했다. ‘한강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목표로 국내외 건축가 7팀을 초청한 지명공모도 진행해 지난달 결과를 공개했다. 미국 뉴욕의 ‘리틀 아일랜드’와 ‘베슬’, 실리콘밸리의 구글 신사옥을 설계한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은 “현재의 노들섬은 자연의 잠재력이 있지만 콘크리트 옹벽으로 둘러싸여 감동이 없다”며 한국의 산을 형상화한 공중 보행로를 제안했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를 설계했던 김찬중 건축가는 “이촌한강공원과 노들섬을 잇는 무빙 캡슐 안에서 시민들이 ‘고요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울시가 건축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노들섬은 제게 ‘아픈 손가락’ 같은 공간”이라는 오 시장의 ‘진심’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열정이 지나쳐 서울시가 조급한 행보를 보일까 우려된다. 서울시는 이번 공모안을 토대로 내년에 본설계를 진행해 2026년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모안을 본 건축계는 “비정형 건축 위주로 지명한 게 아쉽다. 눈에 확 띈다고 창의와 혁신은 아니다”, “서울시가 공모안의 장점을 취합한다며 어설픈 ‘짬뽕’안을 만들까 걱정이다”라고 한다.
요즘 전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한다. 최근 루이비통이 잠수교에서 진행한 패션쇼는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우리의 진가를 정작 우리만 모르는 건 아닐까. 그동안 가치를 몰라봐 준 노들섬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이 노들섬을 귀하게 만들 절체절명의 기회다. 국가의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랜드마크는 형태보다 그 안에 담을 가치부터 깊게 성찰해야 한다. 이후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방향이 결정되면 정권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노들섬의 흑역사를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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