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기료 결정 또 연기… 언제까지 정치가 ‘에너지 大計’ 흔드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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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2023.5.8/뉴스1
8일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2023.5.8/뉴스1
2분기 전기요금 결정이 다음 주로 또 연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료 인상안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한국전력의 자구 노력 미흡 등을 이유로 하루 전날 회의를 취소했다. 당초 3월 말 확정됐어야 할 2분기 전기요금 조정이 40일 넘게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전기료 인상을 놓고 고심하는 정부·여당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3월 말부터 지금까지 에너지요금 인상을 위해 4차례나 당정 간담회를 열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더니, 이번에 또 세부 조율이 필요하다며 회의 자체를 보류한 것은 지나치다. 국정 지지율이나 내년 총선을 의식한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원가의 70%도 안 되는 현행 전기요금 구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조 원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오죽하면 한전 주요 주주인 영국 투자회사가 최근 “대규모 적자를 내는데도 왜 요금을 못 올리느냐”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보냈겠나.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셈법으로 접근한 전기료 왜곡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대표 공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전의 부실은 발전 공기업과 민간 발전사, 협력업체의 부실로 이어져 전력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산업은행의 재무건전성도 위협받고 있다. 적자 보전을 위해 올 들어 발행한 10조 원 규모의 한전채가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데도 요금 현실화를 미룬다면 5년 내내 손 놓고 있다가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지난 정부와 다를 게 없다. 비정상적이었던 전기료를 정상화하고,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해결하는 데 더 이상 정치적 계산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요금 결정 과정에서 외풍을 차단할 수 있도록 전기위원회를 독립기구로 격상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한전 역시 임원 성과급 반납 같은 보여주기식 자구책이 아닌 강도 높은 구조개혁으로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기료 결정#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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