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곡한 청탁[이준식의 한시 한 수]〈21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2일 03시 00분


팔월 호수 물이 언덕까지 넘실대고, 허공을 머금은 채 하늘과 섞여 있네요.
수증기는 호면 위로 피어오르고, 물결은 악양성을 뒤흔들 듯.
건너려 해도 배와 노가 없으니, 한가로운 내 삶이 임금님께 부끄럽다오.
앉아서 낚시꾼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일어나는 물고기 욕심.
(八月湖水平, 涵虛混太清. 氣蒸雲夢澤, 波撼岳陽城. 欲濟無舟楫, 端居恥聖明. 坐觀垂釣者, 空有羨魚情.)

― ‘동정호를 바라보며 장승상께 올리다(望洞庭湖贈張丞相)’·맹호연(孟浩然·689∼740)

호수 언덕과 수평을 이룰 정도로 물이 불어난 8월의 동정호. 물과 하늘이 맞닿은 채 광활한 천지를 이룬다. 수면 위로 증기가 자욱하고 물결은 호반에 인접한 성곽을 뒤흔들듯 넘실댄다. 이 넓고 활기찬 세상으로 대차게 달려나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배도 노도 없는 시인. 재능과 포부를 펼치지 못한 채 한가로이 숨어 지낸다는 게 영 마뜩잖다. 낚시질에 전념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부질없이 물고기를 탐내고만 있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시는 무심한 듯 동정호의 장대한 풍광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인은 활기차게 돌아가는 세상, 이 태평성대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숨기지 못한다.

나이나 지위에서는 시인이 승상 장구령(張九齡)에게 못 미치지만 둘은 이미 시로써 친밀하게 교유해온 사이. 시인이 대놓고 청탁하기는 거북살스러웠을 테지만 시를 지어 권력자에게 스스로를 천거하는 건 당 사대부 사회에서는 관행처럼 통용되었다. 이를 간알시(干謁詩)라 했다. ‘자신만은 청탁을 부끄러이 여긴다’라 했던 두보도 여러 차례 고위층에게 간알시를 올렸다. ‘늙은 천리마는 천 리 내달릴 생각만 하고, 굶주린 매는 한 번 불러주기만을 기다리지요. 그대가 조금만 마음 써 주신다면, 초야의 이 사람에겐 충분히 위로가 되지요.’(‘좌승 위제(韋濟)에게 드린다’) 조바심이 컸던 만큼 자존심마저 팽개치게 만든 게 간알시였다.

#완곡한 청탁#동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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