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황제의 일기 첫 문장. ‘내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는 선량하다는 것과 온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2000년 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10년간 일기를 썼다. 그의 일기 ‘명상록’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황제가 직업이었으나 일기 어디에도 권력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좋은 점을 세세하게 칭찬하고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고백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충고와 다짐이 이어진다. 그는 그렇게 전쟁 한가운데서 내면의 요새를 다졌다.
“너의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자 한다면, 네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떠올려 보라. 예를 들면, 이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저 사람은 겸손하며, 또 한 사람은 너그럽고,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어떤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품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미덕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을 생각해 볼 때만큼 즐겁고 기쁜 때는 없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에 ‘명상록’을 읽어본 후로 때때로 나도 황제를 따라 인생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좋은 점을 써본다.
내 할머니에게서 성실하다는 것과 강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내 어머니에게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최선을 다했던 사랑과 책임을,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소박한 기쁨과 마음을 열고 후히 베푸는 선량함을, 언제나 책을 가까이 두는 습관을 배웠다.
내 스승에게서는 깊은 학식과 지혜를 품고 있음에도 요란하지 않은 겸손함과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았다. 올곧게 걸어온 그의 정직한 삶으로부터 세상의 말을 경청하되 단단하게 자기 중심을 지키는 어른의 품위를 배웠다.
내 친구에게서는 20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건실한 우정과 가까울수록 서로를 존중하는 화법을,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품는 낙관을 배웠다. 내 학인에게서 신산한 삶을 살았더라도 마음은 황량하지 않을 수 있음을, 다정함과 온유함은 타고난 성정이 아니라 오래 단련한 태도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하여 불행조차 끌어안는 부지런한 사랑이 존재함을 배웠다.
인생에서 만나본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타인보다 큰 영향을 끼치는 외부 세계는 없다. 전쟁 같은 삶에서 내 마음의 요새를 지키려 한다면 먼저 내 곁의 사람들을 좋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하고 배우고 받아들이고 따라 해보는 것. 나는 그걸 지혜라고 부른다. 곁의 사람들에게 작은 지혜 하나씩 배워볼 때마다 내 마음 즐겁고 기쁘다. 덕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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