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모국인 튀르키예에서 800년 전 수도는 콘야였다. 그곳의 관광에 대해 조사를 하며,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보다 보니 동양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콘야에서 무슨 동양적인 건물이지’ 궁금해서 그 건축물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봤다.
그러던 차에 중세 시대에 셀주크 제국의 수도였던 콘야가 일본 교토와 자매결연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 도시는 유사점이 많다. 콘야는 터키의 옛 수도,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다. 둘 다 각각 나라의 중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둘 다 역사적인 도시여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점도 같다. 그렇다 보니 양 도시 간 교류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콘야의 도심에 교토 일본 공원 설립이 추진됐고, 2010년에 문을 열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내용을 알게 된 후 좀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이 공원이 교토의 일본 공원 아니고 경주의 한국 공원이 되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반일감정으로 인해 아쉬움이 든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한국에 귀화한 사람으로서 중동이나 유럽 지역에서 누가 동양을 소개할 거라면 당연히 그 주인공이 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생긴 아쉬움이었다. 한국의 정자를 비롯해 전통적인 공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더 확대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원 하나만으로 왜 이렇게 아쉬워하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공원이라는 것이 그렇게 작은 존재가 아니다. 도심 속 공원은 그 도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농촌을 벗어나 도시에 온 시민에게는 공원이라는 곳은 무료로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간이다. 그래서 시민과 공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관계, 또 깊은 유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공원 자체가 외국 스타일로 디자인이 되었다면 이 의미가 더더욱 중요해진다. 그 도시 사람들의 해외 관광 취향에서부터 시작해서 외국 문화의 소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외국에 설치된 공원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외교관’으로 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높이 평가하자면 공공 외교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공원이다.
해외에 한국의 공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 가면 작은 한국 공원이 있기는 있다. 그 공원 안에는 전쟁기념탑이 있다. 튀르키예와 한국이 6·25전쟁을 계기로 수교하면서 1970년대 각자의 공원을 상대방의 수도에 설치했다. 오늘날 여의도에 가면 역시 앙카라 공원과 튀르키예 전통 집이 있다. 그러나 앙카라에는 많은 나라의 이러한 공공 외교적인 시설들이 제법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 조사를 해보니 한국 공원이 더 있었다. 콘야시의 에레일리구에 광진우호공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공원은 교토 공원보다 8년 전인 2002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광진우호공원은 안타깝지만 교토 일본 공원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에레일리구는 말은 구이지만 사실상 군에 가깝다. 즉, 콘야시 중심으로부터 차로 2시간가량 떨어져 있고 인구가 15만 명 정도 되는 작은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에레일리구는 광진우호공원 외에는 그다지 특색 있는 공간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서울 광진구가 왜 이렇게 지방 같은 곳에 한국 공원을 설치하냐고 따질 것은 아닌 것 같다. 되레 광진구 관계자들이 공공 외교의 힘을 충분히 알고, 본인들의 여력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광진구는 튀르키예에서 콘야시 에레일리구와 자매결연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활발한 해외 활동을 통해 외교 강국을 만드는 것이 외교부만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떠나 관직에 있는 모든 이는 나름대로 외교 어젠다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들 중에는 중앙정부 못지않게 인력이 우수하고 재정이 넉넉한 곳들도 있다.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공공 외교의 힘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위상도 한층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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