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동력 저하시키는 행안장관 공백 장기화 [광화문에서/유근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4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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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사회부 차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장관도 없는데…. 다음에 만나죠.”

행정안전부 간부 A 씨는 최근 국회를 찾았다가 의원실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정책 설명을 위해 잡은 면담이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올 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직무가 정지된 후 종종 겪는 일이라고 했다. A 씨는 “지난해만 해도 실세 부처라며 먼저 챙겨주는 의원도 있었는데 최근엔 장관 직무대행(차관)이 간다고 해도 안 만나준다”며 “부모 없는 심정이 이런 건가 싶다”고 했다.

정부 조직과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행안부는 ‘부처 위의 부처’로 불린다. 특히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이 장관이 부임하면서 그 위상은 더 높아졌다. 공직사회에선 올해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입주 과정을 놓고 ‘행안부의 파워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행안부가 기획재정부(5∼9층)를 제치고 로열층(10∼14층)을 차지하자 “이번 정부에선 기재부 위에 행안부가 있다”는 말이 돈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행안부의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기 어려워졌다. 장관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공백이 나타나고, 그 영향이 다른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별교부세 교부 지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행안부는 대선 등 정치 이벤트가 없는 해에는 경제 상황을 고려해 매년 3∼5월 조기 특별교부세를 지자체에 나눠 줬다. 지자체엔 민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단비 같은 돈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이미 교부됐을 시기지만 올해는 최근에야 지자체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지자체 예산 수요를 조율할 장관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방 경제가 최악인데 교부금을 언제 줄 거냐는 지자체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생 법안도 상당수가 표류 중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속으로 추진되던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관련 법안 40여 건 중에 통과된 건 단 6건뿐이다. 특히 핵심 법안인 주최자가 불분명한 축제 행사에 대해 지자체장에게 관리의무를 부여하는 재난안전법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행안부의 한 공무원은 “야당이 ‘장관 복귀 후 논의하자’는 식이라 답답하다”고 했다.

행안부발(發) 국정 공백 사례는 그 밖에도 많다. 윤 대통령의 ‘3+1’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범부처 과제 ‘정부 혁신’도 표류 중이다. 행안부 장관이 간사 역할을 하는 국민통합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도 개점휴업 상태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절차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 국회 의결 후 최종 선고까지 6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2일이 각각 걸렸지만 이 장관은 90일 만인 9일 첫 변론이 시작됐다. 이대로라면 법에 규정된 180일을 모두 채운 8월에나 선고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행안부 장관 부재는 부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행안부의 기능 저하는 다른 부처, 지자체 등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헌재는 판결을 서둘러야 하고, 정부는 국정 공백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탄핵소추안 의결#직무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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