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현 정부 들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은 직역(職域)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며 “직역 간 협의와 국회의 숙의 과정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는 간호협회는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여서 간호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법에서 독립해 별도의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은 간호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러나 간호조무사 등 다른 보건의료인들은 왜 간호사만 별도 법으로 대우하느냐고 반발했다. 간호계는 간호법 제정으로 단독 개원은 못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사 등 다른 직역은 간호사들의 영역 침범은 시간문제라며 맞서고 있다. 정부·여당은 막판 중재안으로 ‘지역사회·의료기관 문구 삭제’ 등을 제시했지만 민주당과 간호협회의 반대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의 갈등이 편 가르기, 세 대결 양상으로 번진 결과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의 헌신적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의료계가 직역 갈등으로 사분오열 갈라지자 의료 대란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다. 과반 의석의 민주당은 간호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등 일방 처리하면서 힘자랑을 했다. 국민의힘은 적극적인 협상보다는 야당 비난에 급급했다. 간호법이 야당 주도로 일방 처리되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뻔히 예상됐는데도 여야가 벼랑 끝 대치만 한 것이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의식해 의사와 간호사 등 직역별 득표 계산에만 골몰했을 뿐 타협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이 재표결에 나설 경우 양곡법처럼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야당 단독 처리,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재표결 부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이 앞장서 야당과 대화하고 10여 개 의료계 직역 단체의 의견을 조율하는 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 요청에 대해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도 좀 더 진솔하게 간호계와의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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