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막하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시작한다.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시 중심 지역 근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여기에서 직접 각국 정상을 맞이한다. 일본 정부는 정상들의 첫 코스로 공원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을 택했다. 기시다 총리가 “원폭의 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봐야 한다”며 의욕을 냈다고 한다.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평화기념자료관에 가봤다. ‘원폭 피해국’ 일본이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곳이다. ‘끔찍한 전시물이 많이 있으니 어린이를 동반한 보호자는 주의해 달라’는 경고문 뒤로 당시 참상이 생생히 담긴 사진, 그림, 전시물 등이 있다. 왜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는지, 태평양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안내는 없다. 다만 1910년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됐고, 조선인이 전시(戰時) 동원 대상이 돼 히로시마 공장에 동원됐다고는 명기돼 있다.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온 조선인 강제징용 근로자들이 1944년 히로시마 신사(神社)에서 찍었다는 단체사진도 걸려 있다.
한국인 강제징용 기술(記述)은 자료관 동관(東館)에 있다. 동관은 1955년 자료관 개관 이후 39년 만인 1994년 히라오카 다카시(平岡敬) 전 히로시마 시장 때 완공됐다. 히라오카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일본 정치인 중 처음으로 식민지배에 공식적으로 사과한 인물이다. “원폭 체험을 얘기할 때는 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이곳을 만들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시절인 2019년 자료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부분을 대폭 줄였지만 한국인 강제징용 기술까지는 차마 없애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며칠 새 자료관을 개조하거나 가림막을 치지 않는 한 윤석열 대통령과 각국 정상은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적은 안내판과 마주할 것이다. 전쟁 책임에 관한 내용이 자료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은 한국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최근 강제동원 역사마저 부인하려 드는 일본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전시해 놓은 것은 평가할 대목이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자료관에서 26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오랫동안 공원 밖에 ‘차별의 상징’으로 방치되다가 1999년에야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위령비 바로 옆에는 높이 약 2m인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2015년 한일 대학생들이 함께 심은 잣나무다. 2011년 양국 학생들이 심은 나무를 혐한 세력이 뽑아 훼손하자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심은 나무다. 8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나무는 더 이상 다치지 않고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일본에서 히로시마는 평화의 상징이지만 식민지배 아픔을 겪은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간단하게만 정의되는 곳이 아니다.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에 대해 ‘피해자 코스프레(가장·假裝)’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함께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양국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에 해를 저지른 역사를 상기하면서 일본의 피해를 생각해 보는 상호 공감의 기회가 될 것이다. 두 정상이 함께 참배한 뒤 평화기념자료관에 전시된 한국인 강제징용 관련 설명을 나란히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화해는 시작될 수 있다. 용기 있는 지도자는 역사를 바꾼다. 히로시마는 역사가 바뀔 만한 상징성이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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