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외 입양 과정의 불법성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그제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는 1979년 고아 신분으로 미국으로 입양된 신성혁 씨가 홀트아동복지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홀트가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입양기관이 입양만 보내놓고 사후 보호관리 의무를 방기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신 씨는 친부모의 경제 사정으로 복지원에 맡겨진 상태였다. 부모가 엄연히 있는데도 홀트는 고아 호적을 만들어 만 세 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당시 고아의 해외 입양 절차는 간소했다. 입양 후 신 씨의 인생은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양부모의 아동학대와 두 번의 파양을 거쳐 열여섯 살 때 노숙자로 전락했다. 더구나 입양기관이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사이 양부모들이 신 씨의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아주지 않는 바람에 불법 체류자가 됐다. 신 씨는 2016년 미국에서 추방당해 3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한국어도 모른 채 힘겹게 살다가 2019년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나라는 1960∼1980년대 ‘수출’식으로 연간 수천 명씩 해외 입양을 보냈다. 지금까지 한국 출신 해외 입양아는 17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중에는 좋은 가정을 만난 입양아도 있지만 신 씨처럼 시민권 획득 같은 기본적 사후 관리도 받지 못해 신산한 삶을 영위한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미국 입양 후 시민권을 얻지 못한 사람은 1만80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열악했던 경제 상황, 입양을 터부시하는 문화, 국가의 방조와 더불어 입양 수수료는 챙기고 입양아를 보호하는 조치에는 소홀했던 일부 입양기관의 무책임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부른 셈이다.
법원은 이번에 “불법 입양 과정에 개입한 증거가 없다”며 국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책임에 앞서 어린아이들이 불법과 무관심 속에 머나먼 타국에서 고통받는 걸 막지 못한 책임에선 벗어날 수 없다. 고국이 길러주지 못했다면 이제 피해 입양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려고 노력하는 자세라도 보여줘야 한다. 한때 ‘고아 수출국’으로 불렸던 부끄러운 기억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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