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들어 있는 4000여 종의 화학물질 중에는 70종이 넘는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뱃갑에 표시되는 발암물질은 8종뿐이다. 니코틴과 타르만 함량이 표시되고 비소, 벤젠 등 나머지 6종은 ‘담배 연기에는 이런 발암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경고문구만 적혀 있다. 모든 성분명을 포장이나 용기에 적어야 하는 화장품, 의약품 등과 달리 담배에 함유된 물질은 일부만 공개하도록 돼 있는 허술한 법규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담배의 유해성분을 철저하게 공개하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미국의 경우 담배회사가 모든 재료와 성분의 목록을 제출하고, 정부가 이를 홈페이지에 올린다. 유럽연합, 캐나다 등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운용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발암물질 8종 외에는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일부 해외 담배회사는 자국 소비자용 홈페이지에는 유해성분의 종류와 함량을 상세하게 밝히면서도 한국어 홈페이지에서는 감추고 있다.
국내 시판 중인 담배에 다양한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정부 조사에서 이미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7년 담배 5종류를 분석한 결과 포름알데히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을 포함해 많게는 28종의 유해성분이 검출됐다. 고농도로 흡입하면 백혈병을 유발할 수도 있는 벤젠은 폐기물 처리장의 굴뚝에서 나온 연기보다 담배 연기에서 측정한 농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국회에서는 담배의 유해성분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2013년 이후 12건이나 발의됐다. 하지만 본회의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담배 성분의 관리를 어느 부처 소관으로 할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담배사업법을 개정해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담배 성분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보건복지부는 법을 새로 만들어 복지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담배의 유해성분 공개는 국민의 건강 및 알 권리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부처들의 밥그릇 싸움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과 같은 정책 컨트롤타워는 뭐를 위해 있다는 말인가. 국회도 정부 내 이견을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부를 배제하고서라도 국민의 건강과 알 권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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