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도심의 한국문화원을 찾았다. 이달 2일까지 문화원 내 한국영화전용관에서는 ‘헌트’ ‘범죄도시2’ ‘브로커’ ‘군함도’ ‘모가디슈’ ‘자산어보’ 등 총 15편의 한국 영화가 상영됐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 중국이 소위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통해 한국 영화, 드라마, 음악, 웹툰 등 ‘K콘텐츠’에 전방위적 규제를 가한 데다 언제쯤 이 규제가 풀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일반 극장은 아니라 해도 오랜만에 한국 영화 상영이 이뤄진 것이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을 재미있게 봤다는 대학생 양샤오위 씨는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그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더 많은 한국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관람객 천모 씨는 “한중 관계가 좋지 않아 한국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한중 문화 교류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K콘텐츠에 대한 中관심
한국문화원에서 상영된 이 15편의 영화는 중국의 정식 수입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 공관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사전 예약만 필요할 뿐 관람료 또한 무료였다.
당초 문화원 내에서는 “한중 관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중국 관객이 주변 시선을 우려해 한국 영화 관람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결과는 ‘흥행 대성공’이었다. 몇몇 작품에는 예약도 하지 않고 현장에 찾아온 일부 관객들까지 몰렸다.
관객들은 전용관 앞쪽에 마련된 ‘한국 배우 200인 사진전’ 또한 관람하면서 좋아하는 배우에 관한 정보를 얻어 갔다. 각 배우 사진 하단에 설치된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스캔하면 해당 배우의 주요 작품 등 프로필이 중국어와 한국어로 소개됐다.
영화 개봉을 주도한 정민영 영화진흥위원회 중국사무소 소장은 “그간 한국 영화를 기다린 중국인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이번에 비정기적으로 상영했지만 이르면 다음 달부터는 주 1회 정기적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심은 앞서 2월 상하이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무료 상영인데도 암표가 등장할 정도로 관객의 호응이 뜨거웠다. 또 티켓 발매 5분도 안 돼 모든 표가 매진되기도 했다. 한한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에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포기할 수 없는 中시장
중국은 한국 영화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영화의 중국 수출액은 839만 달러(약 112억4000만 원)로 국가별 수출액 1위였다. 2019년(117만 달러), 2020년(244만 달러)과 비교해도 크게 성장했다.
한한령 여파 등으로 한국 영화의 상영은 어렵지만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리메이크 판권’ 수출이 급증한 덕을 톡톡히 봤다. 박보영과 김영광이 주연한 영화 ‘너의 결혼식’은 2021년 중국에서 리메이크돼 7억 위안(약 1342억3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중국 배우 탕웨이가 출연하고 남편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원더랜드’ 또한 2021년 중국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 2030세대 여성에게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도 조만간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 빠르면 올해 개봉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CJ CGV는 중국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CGV는 현재 중국 본토에 135개, 홍콩 및 마카오에 2개 등 총 137개의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각종 방역 규제가 해제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람객이 크게 늘고 있다. 중국 CGV의 올해 실적 또한 상당한 호조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국 콘텐츠의 동반 성장도 눈에 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K팝 음반은 중국에서 5132만 달러(약 668억 원)어치 팔렸다. 일본 8402만 달러(약 1126억 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K팝 음반 수입량이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정부는 K콘텐츠 유통을 규제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 젊은 세대는 문화 상품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K콘텐츠를 활발히 소비하고 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사임당, 빛의 일기’를 시작으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태원 클라쓰’ 등 16개 작품이 줄줄이 현지 TV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풀렸다.
中 진출 재개 쉽지 않아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확인됐지만 중국 극장에서 언제쯤 한국 영화를 접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과 이로 인한 한중 갈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영화전용관 개관식 행사가 열렸을 때도 중국 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사드 사태 후 유일하게 원로 배우 나문희가 주연한 영화 ‘오! 문희’가 2021년 12월 개봉됐지만 이후 추가 개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적지 않은 한국 영화가 중국 당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빈부 격차, 양극화 등을 주제로 삼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기생충’은 중국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홍콩에서는 ‘상류기생족’이란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본토에서는 언제 상영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이에 불법 경로로 ‘기생충’을 이미 접한 중국 누리꾼들은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 “중국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 제한이 너무 많다. 오로지 애국주의 영화만 검열을 통과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국 콘텐츠의 대다수가 중국 내 불법 경로를 통해 소비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려를 낳는다. 한국 신작 영화와 드라마는 중국 내 불법 온라인 사이트와 불법 DVD 시장에서 최고 인기다. 중국이 미국 OTT인 넷플릭스를 규제해 중국에서는 넷플릭스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인 ‘오징어게임’, ‘더 글로리’ 등을 모르는 중국 젊은이는 거의 없다. 모두 불법으로 콘텐츠를 시청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적절한 K콘텐츠 소비 방식을 개선하는 것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 현지의 관심과 수요는 충분히 확인됐다. 한중 관계라는 변수 때문에 지금 당장 족쇄가 풀리기는 어렵다 해도 해제를 대비해 한국 정부와 문화 콘텐츠 업계가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 내 불법 콘텐츠 유통 단속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중국이 불법 콘텐츠 적발에 앞장서도록 한국 정부가 중국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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