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엔 프랑스 빈대떡, 갈레트와 크레이프[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8일 03시 00분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파리를 찾은 한국 관광객들에게 최근 계속되는 비 소식은 달갑지 않다. 그럴 땐 지금 그대로의 파리를 즐기면 된다. 예를 들면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고흐나 르누아르가 그린 명화를 감상하거나 생제르맹데프레의 문학 카페로 장 폴 사르트르부터 생텍쥐페리까지 유명 인사들이 드나들던 카페 레 되 마고에 앉아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프랑스식 빈대떡인 갈레트에 사과주인 시드르 한 잔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도 비오는 날의 파리를 즐길 수 있는 여행법이다.

여기서 ‘프랑스 빈대떡’은 파리 북부의 브르타뉴 지역에서 즐겨 먹는 갈레트와 크레이프를 의미한다. 갈레트는 메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한 다음 그 위에 여러 토핑을 올리는 것으로 주로 식사 대용으로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되며, 크레이프는 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하며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로 서비스하거나 길거리에 서서 먹는데 일반적으로 크레이프가 저렴하다.

메인 코스로 즐기는 갈레트 콩플레는 뜨겁게 달군 크레이프 전용 팬에 반죽을 놓고 돌려 얇게 편 다음 앞서 말한 메밀 갈레트 반죽에 가염 버터와 달걀 1개, 가늘게 간 콩테 치즈와 햄, 버섯 등을 넣은 후 네 귀퉁이를 접어 사각형을 만든 다음 3∼4분간 익혀 접시 위에 올려 놓는다. 디저트나 간식으로 즐기는 크레이프는 밀가루 반죽 위에 꿀이나 설탕 또는 잼, 버터 중에 한두 종류를 선택해서 위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만든다.

한국에 빈대떡 맛집이 있듯이 프랑스 빈대떡으로 유명한 장소가 있다. 몽파르나스역 주변의 몽파르나스 거리는 우리네 광장시장처럼 유명하다. 매년 5월 18일 또는 19일에 크레이프 날 행사가 열린다. 이 거리의 라 크레프리 브르톤(사진)은 1937년에 처음 문을 연 터줏대감이다. 가족들이 경영하는데 글루텐이 함유되지 않은 검정 밀에 품질 좋은 버터를 사용하고 라타투이, 가리비, 매콤한 초리조 등을 넣어 만든 갈레트나 밤크림을 넣어 몽블랑 크레이프를 선보이는 등 독창적인 메뉴를 내놓는다. 거기에 브르타뉴 지역의 앤티크 가구와 다양한 오브제로 데커레이션 되어 있어 작은 브르타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특색이다.

로마 시대부터 굴을 양식해서 유명해진 브르타뉴의 캉칼에 처음 문을 연 이후 리옹, 보르도, 파리를 넘어 도쿄에도 문을 연 브레츠 카페의 오너, 베르트랑 라르셰르는 ‘세계적인 크레이프 전도사’로 통한다. 로컬 재료와 재철 재료를 사용하는 심플한 스타일로 재료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과 진정성이 인기의 비결이다. 여기에서 브르타뉴의 명물인 바닷가재로 만드는 ‘브레츠 롤 오마 블루’는 언제나 후회가 없고, 이를 먹고 난 다음 마다가스카르 바닐라가 들어간 아이스크림과 가염 버터가 들어간 캐러멜에 사과 콩포트를 얹은 디저트용 크레이프로 식사를 마무리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치킨에 맥주를 마시듯 갈레트나 크레이프를 즐길 때는 배 또는 사과를 발효해서 만든 알코올 5% 내외의 시드르 브뤼가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니 주문 시 잊지 말자.
#프랑스 빈대떡#갈레트#크레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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