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대한간호협회가 17일부터 ‘준법 투쟁’에 들어갔다. 대리 처방, 대리 수술, 항암제 조제 같은 의사들의 불법적인 업무 지시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준법 투쟁 이틀째인 어제까지는 참가자가 적어 진료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지만 오늘 대규모 규탄대회를 기점으로 단체행동이 본격화할 경우 환자들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
간호사들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가운데 엄밀히 따지면 불법인 것들이 많아 ‘법대로’ 일할 경우 의료현장이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의사들이 부족한 대형 병원에서는 약 1만 명으로 추산되는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이 의사 대신 진단도 하고 처방도 한다. 특히 힘들고 보상이 적어 전공의 지원자들이 기피하는 외과나 흉부외과에선 “PA 간호사가 없으면 수술실이 마비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PA 면허를 따로 두는 미국과 달리 국내 의료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PA 간호사는 불법적인 존재다. 최근 모 대학병원에서 PA 간호사를 공개 모집했다가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례도 있다.
간호사들이 국민 건강을 담보로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2010년 의료현장에 PA 간호사가 도입된 후 양성화 요구가 지속됐는데도 의사단체 등의 반대로 불법 관행을 13년간 방치한 정부의 책임은 더 크다. 간호사들이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지키겠다고 하니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의대 정원이 17년째 동결되면서 PA 간호사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인증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검증된 자격을 갖춘 간호사들만이 PA 업무를 수행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간호법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설익은 입법 시도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인구가 줄고 질병 양상이 바뀌는데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 인력 업무 영역은 재조정하지 않고 방치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령 인구와 만성 질환자 증가로 장기요양기관이나 노인복지관 등 지역사회의 의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의사 중심의 고비용 구조를 대체하면서도 질 높은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10여 개 직역 단체 간 이견을 조율해 합리적인 보건의료 인력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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