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가보고 싶던 창원시립문신미술관에 다녀왔다. 창원은 기존의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된 도시이고 문신(1923∼1995)이 나고 자란 곳은 일본과 한국인이지만 생각의 크기가 거의 ‘우주인’에 가까웠던 세계적인 조각가다. 1992년 프랑스에서는 전문가들의 오랜 심사 끝에 세계 3대 거장 조각가를 선정하고 파리시립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했는데 그곳에 이름을 올린 이가 문신. 그와 함께 호명된 이는 오늘날까지 전설로 박제된 헨리 무어와 알렉산더 칼더였다. 동양인 최초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 주인공도 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며 올림픽공원에 세운 스테인리스 스틸 조형물은 높이 25m(아파트 8층 높이), 무게 54t으로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수직으로 호쾌하게 뻗어 올라가는 장쾌함이 있다.
문신미술관은 문신의 오랜 숙원이자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예순 무렵 영구 귀국한 그는 14년간 이곳을 직접 만들어 나간다. 전시장에는 그 기록들이 설계 드로잉과 육필 원고로 남아 있는데 그 자체가 예술. 그의 작품처럼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기하학적으로 퍼져 나가는 정원과 대문 디자인이 대단하다.
여러 기록물을 살펴보며 가장 놀란 부분은 그가 10대 때부터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마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고향 마산으로 돌아온 그는 열여섯 살 때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하는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아버지에게 보내며 마산에 땅을 사 달라고 청한다. 이미 10대에 본인의 뿌리를 인식하고 그곳에 삶의 좌표를 찍었다는 것이 놀랍다. 프랑스와 한국, 일본을 오가며 국경 없는 이방인으로 살고, 우주로 쏘아 올린 것 같은 큰 작품도 턱턱 만들어내던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꿈과 생각이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는지 경이로운데 그 밑바닥에는 또 선박의 닻처럼 확실한 무게 중심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모순 같기도, 순리 같기도 한 한 인간의 삶이 새삼 복잡다단하게 와닿는다.
그렇게 만든 본인의 미술관은 힘차고 강건했다. 동시에 부드럽고 온화하기도 했다. “쌀가마보다 큰 바위”를 쌓아 만든 옹벽과 연못, 그 위로 널찍하게 펼쳐지는 정원, 그리고 그 사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그의 조각 작품들. “한 번이라도 본 건 결국 손으로 다 나온다. 그래서 내겐 자연을 볼 수 있는 큰 창문이 늘 중요했다”는 다큐멘터리 속 말 한마디 한마디도 묵직한 울림으로 남았다. 시쳇말로 영혼까지 갈아 넣은 듯한 어떤 이의 우주. 세상은 그렇듯 격렬한 정신적, 물질적 유산으로도 굴러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