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법에 서명하면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견제를 받는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자국 기업에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과 메모리 1위 한국은 뒤질세라 국내외 투자 규모를 늘렸다. 최근엔 일본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유치에 성공하고, 반도체 설계 원천기술을 보유한 영국도 주도권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1년 이후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이 밝힌 대일 투자액이 2조 엔(약 19조2600억 원)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대만 TSMC가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3위 미국 마이크론도 5000억 엔을 투자해 차세대 D램을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3000억 원을 들여 요코하마에 반도체 후공정 연구개발 거점을 세운다.
1970, 80년대 반도체 산업 최강자였던 일본의 잠재력은 여전하다. 세계 기초소재 시장 점유율은 55%로 1위, 장비에선 35%로 미국에 이은 2위다. 중국의 위협에 노출된 대만, 북한 리스크가 있는 한국보다 동맹국과 연대해 공급망을 구축하는 미국의 ‘프렌드쇼어링’ 전략에 적합한 파트너로도 꼽힌다. 낸드플래시 2위인 일본의 기옥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미일 양국의 협력은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정부도 2025년까지 3300억 원을 반도체 연구개발 등에 투자한다. 영국의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의 90%를 설계했고, 퀄컴 알파벳 애플 등도 의존하는 반도체 설계 분야의 최강자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인데도, ARM이 다른 나라에 팔리는 걸 영국 정부가 절대 허용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3월에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전력 공급 문제 등으로 삼성전자가 투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2030년 완공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경쟁국들은 투자 결정부터 공장 가동까지 기간을 2∼3년으로 압축하는 초속도전에 돌입했다. 최강국들의 총력전이 된 ‘칩 워’ 한가운데에서 잠시라도 멈춰 서면 패배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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