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면허는 한참 전에 땄으나 내 생활에서는 차가 큰 필요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차가 필요한 때가 한 번씩 왔다.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방 출장을 갈 때마다 조금씩 마음에 걸렸다. 원한다면 차를 타고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중고차 한 대를 샀다.
차가 생긴 후에도 나는 몇 달 동안 차를 장식품처럼 모셔두기만 했다. 주변에서 의아해할 정도로 계속 운전을 주저했다. 아무리 초보라도 이렇게까지 피할 일은 아니었다. 미루고 미루다 겨우 자동차 출퇴근을 시작했을 때는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운전과 맞지 않는 사람인가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초보 운전자니까 남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걱정, 초보 운전자니까 남에게 무례한 말을 듣지 않을까 싶은 공포도 있었다. 이리저리 운전에 대한 부담감만 커져 갔다.
30대가 된 이후로는 생활과 직결된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원의 업무나 사회인의 일, 경조사 처리 같은 어른의 일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운전은 달랐다. 도로에 나가면 반경 1㎞ 내에서 내가 운전을 가장 못하는 사람 같았다. 차선을 바꿀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운전을 할 때마다 나의 무능력과 미숙을 깨달았다. 바로 그 사실,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게 내가 운전을 회피한 이유였다.
“매일 같은 길로 다녀봐요. 차가 몸만큼 작아지는 때가 와요.” 운전 실력이 늘기 시작한 건 동네 카센터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다. 베테랑 운전자들의 충고를 듣기도 했고 운전법 강의 유튜브를 보기도 했지만, 사장님의 말씀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은 차의 크기를 잘 느끼지 못해 운전이 서툴지만 같은 경로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여러 경험을 하고 나면 차의 크기가 마치 내 팔다리의 길이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일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익혔다. 부족하면 반복해서 해 본다. 하다 나아지면 다음 단계로 나간다. 그러다 보면 감당 못 할 만큼 큰일들도 조금씩 작아지다 결국 해결되었다. 몇 년간 비슷한 일만 하며 살다 보니 다 할 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운전이라는 새로운 일 앞에서 도망치려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더 이상 운전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의 말씀대로 해 보기로 했다. 매일 같은 경로를 운전해 출퇴근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요즘은 운전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출근길 고가도로에서 보는 맑은 하늘도, 퇴근길 날이 저물 때쯤 도로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순간도 전에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엇보다 운전이 조금씩 몸에 익어가는 것이 느껴져 즐겁다. 운전이든 뭐든, 주변에 뭔가를 시작하기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랜만에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기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배움의 맛은 어느 정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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