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대목이 두 가지다. 하나는 16년간 280조 원을 쏟아붓고도 0.78명이라는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예산을 집행했다는데 정작 출산을 고민하는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그 돈 다 어디에 쓴 것이냐’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 체감도가 낮다는 점이다. 이 ‘저출산 미스터리’는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저출산 대응 예산 51조216억 원을 분석한 결과 저출산 문제 해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예산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 지원 예산의 경우 23조 원 가운데 40%는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융자로 ‘빌려줬다가 돌려받는’ 돈이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청년과 신혼부부들에게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 자금을 대출해 주는데, 이를 모두 저출산 예산으로 잡아 실제 혜택보다 부풀려 착시효과를 냈다는 지적이다. 집값이 1% 오르면 출산율은 7년간 0.014명 감소한다는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가 보여주듯 주거 지원은 출산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변수임에도 내실 없이 숫자만 뻥튀기해 놓았다는 것이다.
저출산 예산에는 교육부의 산학연 협력 선도대학 육성과 초중고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등 그린 스마트 스쿨 사업비도 들어있다. 국방부의 군무원과 부사관 인건비 증액,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사업비도 저출산용이다. 예산을 쉽게 배정받으려고 저출산과 거리가 멀어도 ‘저출산용’이라고 이름 붙이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이런 거품을 걷어내면 육아휴직 보육지원 아동수당 등 출산율과 직접 관련이 있는 가족 지원 예산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약 30조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2.25%)의 70%에도 못 미친다. 이것저것 끌어다 예산을 부풀려 일하는 시늉만 내다가 ‘저출산 문제는 백약이 무효’라는 불신을 부추겨 문제 해결 동력만 약화시킨 것 아닌가.
저출산 정책은 막대한 돈을 쓰고도 실패한 게 아니라 써야 할 데 제대로 안 쓰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혼 남녀가 희망하는 자녀의 수는 1.8명이었다.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낳고 싶은 사람은 안심하고 낳을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정책을 소홀히 하진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저출산 문제와 무관한 쭉정이 예산을 솎아내고 정책 효과가 확실한 사업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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